4년간 봉급 26억… 도넘은 전관예우

입력 2014-10-24 04:15

국세청 고위 관료가 퇴직 후 대형 로펌에서 6억원대 연봉을 받으면서 4년간 26억원 넘게 벌어들인 사실이 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됐다. 로펌 연봉과 별도로 기업들로부터 4년 동안 자문료 5억여원도 받았다. 이 자문료에 세무 당국이 추가 세금을 부과하자 그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이 판결을 통해 소문이 무성했던 ‘힘 있는’ 정부부처 전관(前官)의 고액 연봉 실태가 일부 드러났다.

광주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이모(64)씨는 1974년부터 30년간 국세청 공무원으로 일했다. 2004년 퇴직해 국내 10위권 대형 로펌에 취직했다. 로펌에서 세무사 겸 상임고문으로 일하며 2007∼2010년에만 총 26억4000만원을 받았다. 평균 연봉이 6억6000만원에 달한다. 로펌에서만 돈을 받은 게 아니다. GS칼텍스, STX팬오션, LG상사 등 주요 대기업에서 별도의 자문료를 받았다. 그가 계약을 맺은 기업 9곳에서 받은 자문료는 2007∼2010년 모두 5억4100만원이나 됐다. 자문 건수가 모두 38건인 것을 감안하면 건당 1400여만원을 받은 셈이다.

이씨는 이 자문료를 ‘기타소득’으로 산정해 종합소득세를 신고했다. 일시적 소득인 기타소득은 필요경비 80%를 제외한 나머지 소득 20%에만 세금을 매겨 사업소득보다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하지만 서울 강남세무서는 “이씨의 자문료는 사업소득”이라며 “추가 세금을 포함해 종합소득세 1억4300만원을 내라”고 통보했다. 이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이씨는 ‘자문 용역을 정기적으로 제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 자문료는 기타소득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측 요청이 있으면 점심 자리에서 구두로 조언하거나 임원들과 통화하는 방법으로 자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문 계약을 맺기 위한 별도 영업활동이 없었고 사무실이나 직원을 고용한 적도 없다”고 했다. 자문료는 공직생활에서 축적한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대가였고 편의상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돈을 받았을 뿐이라는 논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경란)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계약한 회사가 9개였고 받은 돈도 5억원 이상으로 적지 않다”며 “기간도 회사당 수년간 지속된 점을 고려할 때 영리를 위해 반복적·계속적으로 자문 용역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국내 10대 로펌 홈페이지에 따르면 퇴직 후 주요 로펌에서 근무하는 경제부처 출신 관료는 지난 6월 기준 모두 177명이다. 국세청 출신이 68명으로 가장 많고 금융감독원(37명)과 공정거래위원회(34명)가 뒤를 이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퇴직한 고위 공직자들은 오랜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세금 등의 제재가 가진 맹점을 잘 알고 있다”며 “이들을 후배 관료와 접촉하는 창구로 사용하는 로펌도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