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라디오 제2 전성시대] 구닥다리 라디오? 살아있네 살아있어!

입력 2014-10-25 00:31
SBS ‘두시탈출 컬투쇼’
MBC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MBC ‘여성시대 양희은, 강석우입니다’
#1. 영화 ‘라디오 스타’(감독 이준익)에 등장했던 팝송 한 곡은 ‘라디오’가 우리에게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1980년 영국 밴드 더 버글스(The Buggles)가 부른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영상매체(비디오)의 등장으로 라디오 스타들이 죽었다”는 직설적인 가사가 후렴구에 수차례 되풀이된다.

#2. 가수 신승훈(46)이 2008년 발표한 곡 ‘라디오를 켜 봐요’에는 이런 가사도 등장한다.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를 향해 울리는/ 내 사랑 대신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아나요….” 여기서 라디오는 말하기 수줍은 속마음을 전하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해낸다.

1895년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후 1927년 경성방송국을 통해 전파를 탄 우리나라 라디오 방송의 역사는 90여년 동안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TV 출현 후 라디오의 사망을 예견했던 학자들의 우려가 들끓었지만 라디오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더 버글스와 신승훈의 두 노래는 라디오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볼거리가 쏟아지는 시대, 오직 청각에 의존해 있는 라디오는 분명 한계점이 있다. 반면 라디오는 여전히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해내는 중이다.

모두의 매체, 라디오

지난 23일 국내 21개 라디오 채널의 청취율을 주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 중 청취율 1위는 SBS 파워FM(107.7㎒) ‘두시탈출 컬투쇼’(오후 2∼4시 방송)다.

SBS 은지향 라디오 CP는 “8년째 청취율 1위를 달리는 비결은 방청객을 라디오 부스에 직접 초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생방송의 묘미를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10, 20대 어린 친구들부터 60, 70대 어르신들까지 청취층이 다양한 게 특징”이라며 “어린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스튜디오를 찾아 로고송을 따라 부르고, 10대 수험생이 보내는 사연도 많다”고 말했다.

청취율 순위를 보면 라디오가 출퇴근시간 직장인들의 전유물이라기보다 전 시간대에 걸쳐 고루 사랑받고 있는 매체라는 것이 드러난다. 한국리서치 관계자는 “라디오의 가장 단단한 지지층은 30∼50대”라며 “낮시간대에 이들이 주 청취층이 되고 심야시간대에는 10·20대, 오전시간대에는 20∼40대가 주로 듣는 행태를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 오후 8시∼0시 시간대에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해왔다면 최근엔 20대 후반∼30대로 그 시간대 청취층이 다소 올라갔다. 학업 등의 이유로 그 시간대에 라디오를 찾기 어려운 세태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청취율 순위권에는 긴 시간 청취자들과 함께해온 관록의 프로그램들이 올랐다는 특징도 보인다. 2006년 5월부터 8년간 방송 중인 ‘두시탈출 컬투쇼’의 경우 ‘신인’ 프로그램에 가깝다. 2위 자리에 오른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는 1995년부터 20년간, 3위인 ‘여성시대 양희은, 강석우입니다’는 75년부터 40년 가까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신동호의 시선집중’(2000) ‘황정민의 FM대행진’(1998) 등 ‘중견’ 프로그램도 뒤를 이었다.



대중은 라디오의 진화를 원할까

그렇다면 라디오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까. 현장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KBS 2FM 하승필 부장, MBC 김도인 라디오국장, SBS 은지향 라디오 CP에게 ‘라디오의 변화’에 대해 물었다. 새 기술과 매체의 홍수 속에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기 위해 색다른 도전을 계획할 거라 기대했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세 사람은 입을 모아 “라디오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라디오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감 능력이죠. 요즘 세대가 그렇잖아요. 공감 받고 이해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죠. 라디오는 그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든 짧든 사연을 보내면 DJ가 공감해줍니다. 요즘엔 메신저 형태로 만들어진 라디오 플레이어 덕분에 청취자들도 모두 함께 공감해줘요. 라디오가 가진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사연을 받아 소개한다는, 이른바 쌍방향성인데 인터넷을 통해 오히려 이 기능이 활발해지고 있어요. 그동안 라디오를 떠난 청취자들이 있다면 다른 매체의 장점들을 기웃거렸던 게 아닐까.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반성이 나오고 있어요.”

은 CP는 “제작진이 할 수 있는 건 소리와 음악뿐”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좋은 음악을 그대로 전달하기만 해도 감성이 전달돼 반응이 온다. 예능 프로그램화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라디오는 실없이 웃기거나 의미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다”면서 “꾸준히 듣다 보면 세상에 대한 시선과 우리네 사는 이야기, 따뜻함이 온전히 전해진다”고 말했다.

하 부장은 라디오의 대체재라 불리는 팟캐스트(정해진 주제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녹음해 공유하는 콘텐츠)나 음원 스트리밍(음악이 끊기지 않고 선곡돼 제공되는 서비스) 등과 라디오를 비교하며 라디오만의 강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팟캐스트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오늘 날씨가 어떤지, 공기가 어떤지, 기분이 어떤지, 어느 지역에 차가 밀리는지 알려주지 못한다”며 “결국 라디오의 힘은 오늘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라디오의 미래

세 사람이 그리는 라디오의 미래는 어떠할까. 은 CP는 “라디오가 지금껏 ‘그 시간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TV 편성이 왔다 갔다 할 때도 라디오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20∼30년까지 함께해왔죠. 라디오는 원래 반짝거리는 매체는 아니에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을 아는’ 매체죠.”

김 국장은 “원 음악에 충실한 사운드를 송출하기 위해 기술 개발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결국은 소리가 가진 매력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합의가 생기고 있다. 라디오의 기본 기능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 부장은 “보이는 라디오, 모바일 플레이어 등을 통해 라디오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청취 행태를 조사해보면 10%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10%가 라디오 기기를 통해, 나머지 80% 정도는 차에서 듣는다는 결과가 나온다”면서 “중요한 것은 청취자 한 명 한 명을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TV에서 ‘여러분’이라고 부른다면 라디오에선 ‘당신’이라고 불러요. 너와 나의 매체, 나에게만 이야기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유지한다면 누구도 라디오를 없앨 수 없겠죠. 우리가 어마어마한 화젯거리가 되길 기대하진 않아요. 가장 가까이 있는 매체가 되고 싶을 뿐이죠.”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