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백제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금동(金銅)신발이 전남 나주에서 거의 완벽한 형태로 발굴됐다. 그동안 무령왕릉을 비롯해 여러 고분에서 백제 금동신발이 발견됐지만 부분적으로 훼손되거나 일부 장식이 손상된 채 수습됐다.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모양의 금동신발이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금동은 금으로 도금하거나 금박을 입힌 구리를 말한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과 인접한 정촌고분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금동신발을 비롯해 마구(馬具), 금제 귀고리와 장신구, 화살통 장식 등 중요 유물들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히고 23일 현장을 공개했다.
이번에 발굴된 금동신발은 길이 32㎝, 높이 9㎝, 너비 9.5㎝로 신발 앞코 부분의 용머리 모양 장식과 발목의 금동판 덮개, 바닥의 연꽃과 도깨비 문양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됐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조상순 연구관은 “신발 앞에 용머리 장식이 있고, 신발 바닥에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금동신발은 처음 발굴된 것”이라며 “국보급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촌고분의 조성 시기가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금동신발의 제작 시기 역시 5세기로 보인다는 게 연구소 측 설명이다. 이상준 소장은 “정촌고분은 당시 마한세력 수장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금동신발이 백제계 유물이라는 점에서 이번에 출토된 금동신발은 백제가 마한의 수장에게 내린 하사품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고 덧붙였다.
금동신발의 용도는 장례용 물건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백제 금속공예 전문가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이번 발굴을 통해 금동신발의 장송의례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났다”면서 “사이즈도 크고 장식 또한 지나치게 화려하며 실생활에서도 신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하기 때문에 장례의식이라는 특수한 용도로 제작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동신발은 정촌 고분 안에 만들어진 3기의 돌방무덤(석재를 쌓아서 만든 무덤) 중 가장 큰 1호 무덤에서 발굴됐다. 1호 돌방무덤에서는 금동신발 외에도 재갈, 등자 등 마구가 다수 출토됐다. 마구 전체가 한 세트처럼 골고루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그 외에 금제 귀고리와 장신구, 화살통 장식, 화살촉, 옥, 토기, 석침(石枕·돌베개), 개배(蓋杯·뚜껑접시) 등도 나왔다. 가야와 신라, 일본계 유물이 섞여 있어 당시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는 물론 신라, 가야, 왜(倭) 등과도 교류했음을 보여준다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이 예쁜 금동신발을 누가 신었을까?
입력 2014-10-24 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