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김신욱, 나는 예수님께 속한 선수 이 발로 금메달 땄어요

입력 2014-10-25 00:30 수정 2014-10-25 15:12
김신욱 선수는 발도장을 찍어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수락했다.
지난 3일 북한과의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둔 뒤 12명의 태극 전사들이 무릎 기도를 드리고 있다(위). 마이데일리 제공 /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울산지역 청년들. 뒷줄 키 큰 이가 김신욱 선수다(아래). 김신욱 선수 제공
제17회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게임)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종목을 꼽으라면 단연 축구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축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 중 하나이고,

28년 만에 값진 금메달을 땄으니 기쁨은 배가 될 수밖에.

그렇다면 혹 이 장면도 보았는지.

지난 2일 열린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북한을 꺾고 기도하던

12명의 '태극 전사'들을 말이다.

그 순간, 그들이 무릎 꿇은 건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국가대표 공격수 김신욱(26·울산현대) 선수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김 선수는 지난달 17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부상당했다.

쉬어야 하는데, 결승전에서 잠깐 뛴 게 화근이었다.

아시안게임 이후 '시즌아웃' 판정을 받고 현재 입원 재활치료 중이다.

지난 22일 잠깐 집에 다니러 왔다는 그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 선수와의 인터뷰는 ‘카톡’에서부터 시작됐다. 카톡에서 그의 이름은 ‘김믿음’. 현재 상태말은 ‘내겐 주밖에 없네’다. 지난해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MVP를 수상하며 그가 전한 소감은 “저는 예수님께 속해 있는 축구선수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영광 돌립니다”였다. 소감 발표 후 지금 생각나는 게 뭐냐는 MC들의 질문에도 “하나님”이라며 ‘씩’ 웃었다. ‘김믿음’만이 할 수 있는 담대한 신앙 고백이다.



대표팀 안에 예배가 있고 부흥이 있었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기도해보겠다”고 답했다. 이튿날 “기도해봤다.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수락했다. 그렇게 이뤄진 만남. 1시간 동안 설교 한편을 듣는 느낌이었다. 김 선수는 말이 무척 빨랐다. 달변이었다.

“뼈가 안 좋았는데 결승전은 무리해서 나갔다. 그것 역시 하나님과 함께한 추억 가운데 하나다. 한순간도 하나님이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내가 열심히 교회 다녔더니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잘못된 믿음이다. ‘김신욱처럼 믿어라, 그래야 축구 잘한다, 돈을 많이 번다(실제 김신욱은 국내 K리그 토종 선수중 연봉 랭킹 2위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우리는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다.”

-김 선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내 안에 계시고, 늘 동행하면서 대화하는 하나님은 진정한 자유를 주셨다. 세상이 나를 비난하고 욕해도 주님과 함께 있으니 기뻐할 수 있다. 와일드카드로 출전한다는 부담감? 아니다. 나에게 가장 큰 부담감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꿈을 이뤄드리고 있나’이다. 즉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국가대표에 임하는 나의 각오다. 그 열매로 대표팀에 예배가 있었고, 부흥이 있었다는 것을 나누고 싶다. 우리 안에 예배하는 자들이 있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선수들이 만난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다.” 그만이 밝힐 수 있는 아시안게임 뒷얘기다.



기도용사 12명, 주님과 한 첫 약속을 지키다

“대표팀에 처음 소집되고 명단을 확인했다. 국가대표에 6년 있었지만 23세 미만 선수들은 잘 모른다. 나까지 크리스천은 딱 두 명. 독일에서 뛰는 김진수(호펜하임) 선수다. 지난 1월 전지훈련 때 같은 방을 썼다. 나는 잠자기 전 늘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찬양 30분, 기도 30분. 또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진수와 같이 예배를 드렸다. 20일 전지훈련 동안 진수의 신앙이 바뀌었다.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믿던 진수가 ‘하나님을 위해 나, 김진수가 있다’고 고백했다. 진수를 ‘요한’이라 부른다. 하나님이 전부인 애다.”

둘로는 부족했다. 더 많은 기도 용사가 필요했다. 그는 소집 첫날 저녁식사 시간에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갔거나, 하나님에 대해 흥미를 보이는 선수들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진수와 나를 포함해 11명이 첫 예배를 드렸다. 그때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했다. 또 (이)영표 형이 만난 하나님도 들려줬다. 우리 인생이 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기도를 드렸다. 헤어지기 전에 약속도 했다. ‘너희 중에 혹시 다음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또 와라. 하지만 꼭 기억해. 잘되는 공동체와 잘되는 나라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셨어.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위해 기도해 보자.’ 사실 그 약속은 거짓이었다.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날 예배에선 동기부여가 필요했고, 그게 금메달이었다.”

두 번째 예배드리는 날, 한 명이 더 참석했다. 12명. 그리스도인에겐 의미 있는 숫자다. 목·일요일 두 번 예배를 드렸다. “본격 경기를 시작한 어느 날 주장 장현수 선수가 ‘신욱이 형, 경기 전날에도 예배드려요’라고 말하더라. 경기가 거의 이틀에 한번씩 있는데. 예배가 시작되고 선수들이 어떤 얘기를 한 줄 아는가? 예수님의 ‘예’자도 모르던 그들이 ‘신욱이 형, 기도하는데 왜 몸이 뜨겁죠?’ ‘형, 닭살이 돋고 이상해요’ ‘찬양 부를 때 왜 내 마음이 평안하죠?’ 몸이 뜨거워진다고 하더라. 좁은 예배의 방에서 그런 역사가 일어난 거다.”

-선수들이 성령체험을 한 건가.

“그렇다. 삶의 목적이 바뀌었다. 금메달을 위해 믿었던 하나님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찍은 것이다. 메달 색이 아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스스로 주님의 도구가 될 것을 청했다.”

그리고 때가 됐다. 북한과의 결승을 앞둔 날, 김 선수는 히브리서 12장 1∼2절로 마지막 예배를 인도했다. “말씀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인생을 경주로 표현한다. 그래서 얘기했다. ‘너희들은 경주가 남아 있다. 내일 결승전이 있고, 그 이후에 우린 헤어져야 한다. 난 너희들을 위해 더 이상 예배를 드려줄 수 없어. 이제 각자의 예배가 시작되어야 하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난 너희들이 이 경주에서 꼭 완주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할 거야.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살자. 그런데 많이 힘들 거야. 그럴 때마다 히브리서 2절 말씀을 기억해.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봐. 그럼 그 경주에서 완주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이다.”

-그리고 금메달을 땄다. 그 자리에서 감사기도를 드린 건가.

“하나만 약속하자고 했다. 내일 경기에서 우승하면 자기 즐거움 다 내려놓고, 하프라인에서 둘러앉아 기도를 드리자고.” 김신욱을 비롯해 김승규 김진수 장현수 손준호 이종호 이용재 임창우 곽해성 최성근 이주영 김민혁 선수. 기도의 용사 12명은 주님과 한 첫 약속을 지켰다.



씨 뿌리는 사명, 30년 후에는?

중2 때 친구를 따라 처음 교회에 간 김 선수는 고3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축구를 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때부터 가는 곳마다 말씀의 씨를 뿌렸다.

-아시안게임 때도 그렇고, 메시지는 어떻게 준비하나.

“고3 때부터 수요 예배는 빠진 적 없다. 수요일은 목사님이 주로 강해식 설교를 하지 않나. 성경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됐다. 성경도 마흔 번 읽었다. 목사님 설교를 틈틈이 메모했다가 우리 상황에 맞게 말씀을 전한다. 물론 목사님이나 신학대를 다니는 친구들에게 늘 묻고 검증을 받는다. 내 이야기가 되면 안 되니까 말이다.”

요즘 그는 젊은이들을 세우는 일에 열심이다. 이 또한 씨 뿌리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겐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어 보인다. 눈만 뜨면 교회가 있고, 인터넷에 물어보면 다 알 수 있다. 편하게 신앙생활을 한다. 자기를 즐겁게 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눈앞에 있고, 하나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다. 이 땅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복음을 모르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과 함께 울면서 기도하는 거였다.”

지난여름, 월드컵을 마치고 팀에 복귀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모임’을 만들었다. 축구선수를 포함, 10여명의 청년들이 매주 목요일 울산 흰돌교회에서 기도를 드린다.

-어떤 젊은이들이 모이는가.

“평범함을 거부한 이들이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가는 걸 이해 못한다. 모이기에 힘쓰고 예배하고 전도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사도행전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최근엔 입원 중인 병원에서도 젊은 선수들과 예배를 드렸다.” 가는 곳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김 선수는 부지런한 농부였다.

-너무 앞서가는 것 같지만 은퇴 이후가 기다려진다.

“지금이야 남들한테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때는 하나님께만 인정받고 싶다. 세상 사람들은 전혀 관심 없는, 볼품없는 곳에서 가족과 하나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지에서 축구로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을까? 그게 꿈이다.”

김 선수는 팔복 가운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는 말씀을 자주 이야기했다. “축구를 그만둔 이후에는 이 땅에서 편안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 자신이 없다”며 “핍박받는 현장에서 주님을 전하는 게 복”이라고 강조하며 한 말이다. 196㎝의 큰 키에 285㎜ 운동화를 신고 ‘좁은 길’로 향하는 ‘국대’ 김신욱을 응원한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