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명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임찬상 감독의 손에 의해 다시 한 번 제작되었다. 25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세상은 디지털 문명으로 완전히 변했지만, 영화는 주인공 영민과 미영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박중훈과 고 최진실에서 조정석과 신민아로 각각 바뀌었을 뿐 내용은 이전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전 영화에서 출판사 말단 직원으로 소설가를 꿈꾸던 영민이 새로운 영화에서는 시인을 꿈꾸는 주민센터의 9급 공무원이 되어 여전히 아내 미영과 티격태격하는 신혼생활의 모습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옛 영화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로서는 과거 이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전달했던 ‘소박함의 미학’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살아 있는 ‘습관화된 사랑의 미학’을 일깨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감독은 자신의 독특한 미장센(mise-en-sc멛ne)을 통해 신혼부부의 소박한 일상과 사랑을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미장센이란 영상 위에 드러난 인물과 배경 그리고 음악과 조명 등을 통해 감독의 독특한 정서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옛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는 철로가 지나는 변두리 동네의 단칸 셋방에 살며 시상식에 가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주인집 아저씨에게 넥타이를 빌려야 할 만큼 경제적 풍요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한다. 그러나 좁은 골목길로 난 창문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가난이 아닌 행복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감독은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7)가 무엇인지를 잘 표현할 줄 아는 감독이다.
특히 옛 영화는 곳곳에 하나의 미장센으로 교회의 이미지를 심어놓고 있다. 미영의 첫사랑의 남자가 그녀가 대학시절 다녔던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였다는 사실과 새벽마다 주인공이 사는 골목에 울려 퍼지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는 예전에 누구나 한 번쯤은 교회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성탄절을 배경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이 들려오는 가운데 성가복을 입고 새벽송을 도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나타난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들이 누렸던 소박한 행복이 교회와 무관하지 않음을 뜻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는 주인공의 사랑이나 행복과 연관된 교회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현대의 교회는 너무 크고 화려해져서 소박한 부부의 일상이나 풋풋했던 첫사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습관화된 사랑’이 결혼생활을 어떻게 지속시켜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부부의 소소한 갈등과 다툼은 평소 몸에 밴 사랑으로 파국을 피해 간다. 게리 채프먼이 자신의 베스트셀러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지적한 대로 평소 사랑의 감정을 담는 러브 탱크(love tank)가 채워져 있을 때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발전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민이 ‘사랑해 미영’을 자주 말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을 지속적으로 마음에 담아두는 동시에 습관화된 사랑의 언급은 진짜 사랑이 필요한 시점에서 작용하도록 돕는다.
영민은 아내가 친정에 간 사이 세련된 미모를 지닌 대학 동창과 육체적 관계를 맺으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내의 이름을 불쑥 내뱉는다. “사랑해, 미영!”
관객들은 박장대소하지만 한편으로 영민이 진실로 아내 미영을 사랑하고 있음을 모두가 알게 하는 대목이다. 평소 입버릇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던 습관은 뜻밖에도 남편을 불륜의 유혹으로부터 구원하는 결정적 열쇠임을 드러낸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고 하지 않던가! 습관처럼 사랑을 말하는 일이 마음 없는 행동이 아니라 내면 깊이 자리하고 있는 진실이 되어 결혼의 위기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행동하는 대로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이혼 건수는 11만5300여건으로 하루 316쌍이 이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살률에 이어 이혼율에서도 OECD 국가 가운데 1위에 올랐다. 사랑이 습관이 되도록 평소에 사랑의 말을 자주 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영화평론가)
[강진구의 영화산책] 사랑을 습관화하라
입력 2014-10-25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