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시기를 확정하지 않고 전환 시기를 결정하는 ‘조건’만 구체화한 것은 과거 전례를 밟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미 두 차례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한 바 있어 여건이 조성된 때 전환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일단 2020년대 중반을 잠정적인 전환 시기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가 합의한 전환 조건을 보면 사실상 전작권 전환은 무기 연기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일각에서 이번 합의가 ‘군사주권 포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작권 전환 시기 연기 배경과 한·미 갈등=2006년 한·미 정상이 전작권 전환에 합의한 것은 북한의 위협이 감소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발생과 2012년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로 한반도 안보 상황은 악화됐다. 특히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은 북한의 핵 능력이 무기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을 조성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통치하는 북한사회의 내부 불안정성이 높아진 것도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낳게 했다.
때문에 양국은 2010년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한 데 이어 올해도 재연기에 합의했다. 앞으로도 북한의 위협이 감소될 가능성이 낮고 우리 군의 대응능력은 갖춰지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양국이 판단한 것이다.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신형 다연장포(MLRS) 배치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타격할 수 있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체계와 킬 체인도 2020년대 중반이 돼야 각각 구축된다. 국방부가 2020년대 중반을 잠정적인 전환 시기로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 한·미가 합의한 세 가지 전환 조건이 모두 충족될지는 불확실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감시정찰 능력과 타격 및 지휘통제 능력이 제대로 구비되기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미 양국은 전작권 전환 시기를 공동성명서에 명기할지를 놓고 적잖은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국가 간 약속을 또 다시 연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시기를 명시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반면 우리군은 잠정적으로라도 시기를 정하지 않으면 ‘전작권 전환포기’라는 비판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이번 회의 개최 직전까지 막판 조율을 시도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 그만큼 전작권 전환에 대한 우리군의 의지와 능력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깊음을 시사한다.
◇향후 일정, 매년 전환 조건 평가=한·미는 내년까지 ‘한미연합 이행체계’를 구성해 앞으로 매년 한반도 주변 안보 상황, 북한 핵·미사일 위협, 한국군의 핵심적인 대응능력 확충 등 전환 조건을 평가한 뒤 그해 SCM에 보고키로 했다. 이를 토대로 양국의 군 통수권자들이 전작권 전환 시기를 결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양국은 2015년 12월 1일로 전작권이 전환되는 것을 토대로 작성한 ‘전략동맹 2015’를 폐기하고, 이번 합의를 기초로 새 행동지침을 담은 문서를 내년까지 작성할 계획이다. 새 지침에는 전작권 전환 시 기존 미군 주도의 연합군사령부에서 한국군 주도로 바뀌는 새로운 연합방위사령부 등 지휘체계와 새 연합작전계획 등이 담길 예정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전작권 전환 사실상 무기연기] 전환 ‘시기’보다는 ‘조건’으로 초점 이동
입력 2014-10-2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