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70·사진) 동부그룹 회장이 23일 동부제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30년간 추진해온 ‘철강왕’의 꿈도 사그라졌다.
김 회장은 현재 30대 대기업 집단에서 보기 드문 1세 경영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기업 활동과는 거리가 먼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어려서부터 사업가를 꿈꿔온 김 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인 1969년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창업했다. 건설업에서 모은 돈으로 1970년대 동부고속, 동부상호신용금고 등을 세웠다. 이어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해 그룹의 외형을 키웠다.
철강업에는 1984년 동진제강을 인수해 뛰어들었다. 김 회장은 철강업에 유독 큰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굴지의 철강회사 포스코를 뛰어넘는 게 목표였다. 그가 서울 강남의 포스코센터 옆에 동부금융센터를 더 큰 규모로 짓고 뿌듯해했다는 일화도 있다.
철강왕으로서의 꿈이 본격화된 것은 2007년이다. 당시 동부제강은 제철소의 필수조건인 전기로 공사에 착공했다. 이듬해에는 제철소를 보유했다는 뜻에서 이름을 동부제철로 바꿨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전기로를 가동하기 시작한 2009년은 금융위기 이후 중국발 철강 공급 과잉이 시작된 때였다. 전기로의 원료인 고철 가격이 높아지면서 타산도 맞지 않았다. 다른 방편에서 심혈을 기울인 반도체 사업도 성과가 좋지 않았다. 1997년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를 세워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2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되는 동안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철강·반도체업에 투자된 막대한 재원은 자금사정 악화를 불러왔다. 결국 동부그룹은 지난해 12월 3조원 규모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동부하이텍, 동부특수강, 동부발전당진 등이 매물로 나왔고, 동부LED 등 계열사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동부제철은 포스코가 인수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날 채권단과 경영정상화계획 이행(자율협약) 약정(MOU)을 맺었다.
김 회장이 동부제철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율협약에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100대 1로 차등 감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회장이 경영권을 잃는 수순이다. 단 김 회장이 사재 출연 등으로 회사 경영정상화에 기여하면 주식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재기할 기회가 남아 있는 셈이다.
김 회장에게 남은 직함은 동부대우전자와 동부메탈의 대표이사, 그리고 비공식 직함인 그룹 회장이다. 앞으로 그룹 구조조정 방향에 따라 남은 직함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김준기 회장 ‘철강왕’ 꿈 30년만에 접다
입력 2014-10-24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