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감청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이버 검열’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급기야 다음카카오는 카카오톡 개인메시지의 서버 저장기간을 2∼3일로 줄이고 수사기관의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는 극단적인 대책까지 내놨다. 그래도 해외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는 ‘사이버 망명’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현대인의 ‘도플갱어(분신·分身)’나 다름없는 스마트폰을 통한 프라이버시 유출 우려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70%가 넘는다. 각종 SNS 정보는 물론 은행 거래와 자동차 관리까지 모두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해결하고 있다.
수사기관 사람들은 감청 논란이 “맥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말한다. 굳이 감청을 안 해도 스마트폰만 압수하면 원하는 정보를 대부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메시지? 서버에서 모두 삭제해도 휴대전화를 분석하면 거의 100% 복원이 가능하다. 도대체 우리 스마트폰에는 어떤 정보가 얼마나 많이 담겨 있을까.
◇“감청요? 뭘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감청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스마트폰만 압수하면 다 나옵니다.” 서울 일선경찰서의 사이버범죄 전담 경찰관은 23일 스마트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법적으로 감청 대상은 내란·외환·살인 등 중범죄로 한정된다”며 “웬만한 범죄는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혐의를 잡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스마트폰의 메모리 저장·삭제 방식 때문이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의 문자메시지나 통화내역 등을 삭제하면 일종의 표지판 역할을 하는 ‘헤더(header)’ 부분만 사라진다. 스마트폰의 검색 시스템은 헤더를 통해 해당 파일의 유무를 판별하기 때문에 헤더가 없으면 해당 파일이 삭제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헤더를 복구하면 삭제됐던 파일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헤더 외의 나머지 데이터는 스마트폰 메모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진 동영상 문자메시지 등 데이터의 종류와도 상관없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과거엔 메모리 전체에 데이터를 여러 차례 덮어씌울 경우 복구가 다소 어려웠지만 지금은 대부분 해결책을 찾았다”고 했다. 게다가 최신 스마트폰은 용량이 16∼128GB나 돼 일일이 파일을 덮어씌우기도 어렵다. 평균 사용기간도 1∼2년밖에 안 된다. 따라서 스마트폰 하나를 분석하면 이 기계를 사용한 1∼2년 사이의 모든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셈이다.
◇아이폰·텔레그램도 예외 없다=수사기관이 주로 들여다보는 정보는 문자메시지와 통화내역, 카카오톡 등 메신저 대화 내용이다. 이 세 가지만 확보해도 피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은행거래나 신용·교통카드 결제 내역, 위치 정보 등도 필요하면 얼마든지 추출해낼 수 있다. ‘사이버 망명’ 열풍의 수혜자인 독일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도 예외가 아니다. 고려대 임종인 정보보호대학원장은 “(텔레그램도) 회사 서버에 대화 내용을 저장하지 않을 뿐 스마트폰에는 기록이 남는다. 암호화한다고 해도 암호 키가 이미 스마트폰에 남아 있어 결국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불거진 ‘사이버 망명’은 어불성설이고 실은 ‘사이버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때 아이폰은 ‘대포폰’ 업계의 베스트셀러였다. 폐쇄된 운영체제 덕에 복원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덕이다. 그러나 수사기법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단 스마트폰 이전에 사용되던 2G폰은 여전히 데이터 복구가 까다롭다. 경찰 관계자는 “2G폰은 컴퓨터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스마트폰과 운영 시스템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별건 수사 논란=스마트폰만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워낙 많다 보니 수사기관 안팎에선 남용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혐의를 수사하는 별건(別件) 수사다.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스마트폰에 저장된 다른 정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원장은 “미국처럼 수사팀을 둘로 나눠 한 팀이 스마트폰을 분석하고 영장 혐의 관련 정보만 추출해 다른 팀에 전달케 하는 ‘더블 팀’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법원도 부적절하게 수집된 증거는 과감히 기각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기획] 스마트폰만 털어도 다 나온다
입력 2014-10-24 0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