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면 어떡합니까.” “주차할 자리가 없네요. 예배 끝나면 바로 뺄게요.”
지난 19일 주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경비원 박모(67)씨와 인근 교회 김모(45) 집사의 실랑이 장면이다. 신자들이 자신의 차량을 아파트 거주자 구역에 주차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경비원들이 단속을 나선 것이다. 이날 경비원들의 손에는 A4용지 크기의 ‘주차위반’ 스티커가 들려 있었다. 앞서 예배를 드리고 나온 한 신자는 차량 전면 유리에 붙은 스티커를 제거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김 집사는 “어렵사리 주차를 해놨어도 안심할 수 없다. 예배 도중 차 빼라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며 “주차 때문에 어렵고 난감하다”고 했다.
매주일 한국의 교회당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교회 차량 때문에 길이 막히고 주민과 갈등을 일으킨다며 비판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연 주차는 기독교 신앙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일까. 이런 가운데 이웃 간 갈등을 최소화하고 주중에 주차장을 개방하는 ‘사랑의 주차’를 실현하는 교회들이 있다.
주차도 예배, 불편도 영성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는 매주 교회 신문에 주차장·셔틀버스 이용 안내 광고를 낸다. 2년 전부터 바뀐 주차 시스템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변경된 주차제도는 자가용 억제, 대중교통 활성화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셔틀버스를 증설, 교회 인근 3곳의 지하철역에 배치했다. 그동안 순복음교회의 상징이었던 ‘교구 버스’의 무단 주차도 대폭 줄였다.
지난 22일 교회에서 만난 차량분과위원회 위원장 이장우(63) 장로는 “5분 간격의 셔틀버스 활용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며 “기존 신자들부터 자가용 사용을 억제하고 불편을 감소하자는 의견을 당회가 수용해 변화를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교구 버스는 주일이면 여의도 일대 주요 도로에 무단 주차하면서 심각한 교통체증과 민원 발생의 원인이 됐다. 지금은 버스의 80%를 인근 서강대교 공영주차장에 주차토록 하면서 주변 도로가 어느 정도 정리된 모양새다.
신자들의 교회 주차장 사용도 새신자나 장애인 위주로 편성했다. 이 장로는 “주일 예배당(대성전) 지하주차장에는 장애인과 새신자 차량만 허용하고 있다”며 “교육관과 선교센터 등 부속건물 주차장은 1∼7부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이 짧은 시간에 걸쳐 이용토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역자나 장로, 봉사자 등 기존 신자들은 교회에서 다소 거리가 먼 국회의사당 둔치 주차장이나 서강대교 아래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교인 박남규(39)씨는 “요즘은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며 “승용차보다 불편하지만 주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에 임한다”고 말했다.
순복음교회의 주차환경 변화는 신자만 47만명에 달하는 교회에 주차장 수용 규모는 460대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감안한 특단의 조치였다. 매주 교회 신문에 등장하는 광고 문안에는 ‘조금 불편한 곳에 주차하는 것은 섬김의 시작입니다’라는 말이 씌어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경의로 거룩한빛광성교회(정성진 목사)는 예정됐던 주차장 건립 계획을 취소하고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교회는 2년 전 차량 300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제직회에서 “교회 재정을 주차장 건립에 사용하지 말자. 차라리 불편하게 살자”는 의견이 나왔다. 회의를 진행하던 정성진 목사는 만약 어려움이 없으면 건립하지 말자고 받아들였다. 주차장 건립 안건은 당회에서도 통과된 사안이어서 당시 결정은 파격적이었다.
교회는 이후 대중교통 이용운동을 벌였고 이를 주보에 지속적으로 광고, 교인들에게 알렸다. 교회 직분자들은 매주 띠를 두르고 나와 홍보하기도 했다. 덕분에 상당수 신자들이 대중교통 이용에 나섰고 새신자나 장애인, 어린 자녀가 딸린 가족 등만 주차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교회 주차장 개방
경기도 화성시 봉담상동교회(김기목 목사)는 5년 전부터 주중에 교회 주차장을 개방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36.3㎡(120평) 정도다. 차량 10대 정도 주차가 가능하다. 인근 은행 직원과 상가 업자 등이 자주 이용한다.
교회가 주차장을 개방한 것은 평일에 텅 빈 주차장이 민망해서였다. 김기목 목사는 “처음엔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플래카드를 써놓고 개방했다”며 “다만 신자들이 교회에 오면 주차할 수 있도록 몇몇 주차공간은 주차금지 표지판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누군가 표지판을 치우고 주차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이 주차할 공간이 없어졌다. 김 목사는 고심 끝에 교회 승합차를 비스듬히 세워 서너 대 정도의 주차 공간을 확보했다. 하지만 곧바로 반응이 왔다.
“누군가 교회에 전화를 했어요. 승합차를 똑바로 주차해 달라. 주차할 수가 없지 않느냐는 내용이었어요.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상대방은 ‘어쩌라구요’하며 전화를 끊더군요.”
그 일이 있은 후 교회는 주차장 개방을 폐쇄했다. 그러나 교회 주차장이 텅 빈 것을 본 김 목사는 민망한 마음이 들었고 다시 주차장을 개방했다. 처음 내걸었던 현수막도 다시 설치했다.
“손바닥만한 주차장으로 어지간히 유세를 떤 것 같아 어찌나 창피했던지요. 제 마음이 손바닥만한 것은 아닌지 반성했어요.” 김 목사는 겸연쩍게 웃었다.
서울 구로구 구로중앙로 구로순복음교회(김봉준 목사)는 교회 입구 부지를 주민들을 위한 주차장으로 개방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5대가량 주차가 가능하다. 교회는 원래 이웃을 위한 주차빌딩을 건립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아예 부지를 개방한 것이다. 교회는 주일에도 주차 갈등은 없는 편이다.
구로순복음교회에 주차 문제가 없는 이유는 ‘택시주일’을 지키는 탓도 크다. 택시주일은 2개월에 한 번씩 교인들이 택시를 이용해 교회에 나오는 날로, 지역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시작된 일종의 이벤트다. 교인들이 택시를 이용하는 탓에 다른 주일보다 주차장 공간은 남아돈다.
서울 도봉구 도봉로 물댄동산수림교회(신종렬 목사)는 올해로 개척 7년 된 교회다. 원래는 차량 5대를 수용할 정도의 주차공간만 있었으나 신자들이 점차 늘자 인근 고등학교와 협력해 학교 주차장을 사용하고 있다. 대신 교회는 고교생 5명을 대상으로 멘토가 됐다. 최근엔 매년 성탄헌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학교 주차장은 50대 정도 주차가 가능하다.
신종렬 목사는 “교회가 위치한 지역이 도봉산 입구였고 다소 외진 곳이어서 신자 대부분이 차를 가져왔다”며 “다행히 학교에서 협조해주면서 주차난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교회는 부흥회나 세미나 등 평일 모임이 생길 경우엔 인근 음식점 주차공간 등을 확보해 사용하고 있다.
이웃 간 유대관계가 관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안산동산교회(김인중 목사)는 인근 관공서 주차장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 교회다. 주일예배 주차장은 상록구청(400대)과 안산시농업기술센터(200대), 상록경찰서(50대), 한양대(200대)를 이용하고 있다.
교회 관계자는 “2006년 입당 이후부터 주변 기관과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주차장을 활용하고 있다”며 “주중에 구청 등에서 교회 주차장 사용을 요청하면 420대 주차가 가능한 본당 주차장을 개방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관공서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교인 중 일부는 감사의 뜻으로 상록구청 주차장을 청소한다.
안산동산교회는 작년까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를 위해 이벤트를 펼쳤다. 주일에 자전거나 도보로 5분 이상 이용하거나 50회 넘게 이용하는 경우 스티커를 발부, 추첨을 통해 선발된 교인은 미국 창조과학 탐사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본당 교회 지하주차장은 차량 한 대당 4인 이상 탑승자, 또는 새신자에 한해서만 입차를 허용하고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시선] 주차 갈등, 교회가 나섰다
입력 2014-10-25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