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달자]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입력 2014-10-24 02:20

가을이 깊어진다. 나무의 안이 들여다보일 듯하다. 그러나 안은 멀다. 나무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저 나무 안으로 아주 많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아니다. 내가 눈을 뜨지 않고서는 아무리 안으로 들어가도 나무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은 그 일생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여린 연둣빛 잎에서 폭우와 폭풍을 견디며 자란 검푸른 녹음의 무게를 내리고 허공의 주인공이었던 잎들이 땅으로 겸허히 내리는 것이다. 나무는 옷을 벗었다. 자기를 지켜주던 잎들이 내리고 이제부터는 한겨울의 한파를 제 몸으로 지켜내야 한다. 그 어떤 폭우도 폭풍도 가릴 것이 없다. 벌거벗은 몸으로 겨울을 나면서 나무가 견디어야 할 것들은 참으로 많을 것이다.

우리가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나무는 한갓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무 아래 보잘것없이 보이는 풀들도 계절을 견디는 고통은 마찬가지다. 모두 제 나름의 힘겨움이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나무는 한겨울의 한파를 맨몸으로 견딜 수 있어야 봄의 새 생명을 얻게 된다. 견디는 만큼 축복이 있을 것이다.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견디며 사는 것을 보면 자연의 이치는 생명을 돕는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걸 믿게 된다. 결국은 겨울을 앞에 두고 우리가 눈 떠야 하는 것은 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모든 생명의 안은 뜨겁다. 그리고 외롭다. 그 안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일이 예술이 하는 일이며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미국의 나탈리 골드버그는 평범한 주부에서 글쓰기 공부를 해 책 하나를 썼다.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라는 책은 9개 나라에서 번역되고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를 이어가고 있다. “당신이 얼마나 안을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글쓰기는 당신의 필요한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라고 한다. 그는 스쳐가는 많은 배경 중 그래도 마음이 당기는 것을 끌어 당겨 깊이 보는 일이야말로 자기사랑의 가장 기본이라 했다. 그는 우선 뼛속까지 내려가 자기 마음의 본질적 외침을 적으라고 말한다.

정말 우리는 종일 무엇인가 말하면서 자신의 본질적 외침이 무엇인가 알고 있는가.

신달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