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노조의 쟁의행위(파업) 찬반투표가 22일 가결됐다. 노조로서는 19년 무파업 기록을 깨고 20년 만에 파업에 돌입할 요건을 갖췄다. 지난 2분기 1조1037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으로서는 경영 부담을 더하게 됐다.
◇파업 찬성 55.9%로 가결=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 찬반투표 개표 결과 총 조합원 1만7906명 가운데 1만31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만11표, 반대 248표가 나왔다고 밝혔다. 찬성이 재적 조합원의 55.9%로 재적 과반수 가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번 개표는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이뤄진 것이다. 노조는 지난달 23∼26일 일정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시작했으나 회사의 방해를 이유로 개표를 무기한 연기했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그러나 이날 개표 전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임단협 교섭 재개 방침을 밝혔다. 노사는 23일 실무협상을 한 뒤 24일 제41차 본교섭을 할 예정이다. 지난달 19일 이후 36일 만의 교섭이다.
만약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게 되면 1994년 파업 이후 20년 만의 파업이다. 노조는 1996년에도 파업 찬반투표를 가결시켰으나 실제 파업은 하지 않았다.
◇파업 계획은 미정=노조가 언제든지 파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춤에 따라 현대중공업 사측은 전보다 큰 부담을 안고 교섭에 나서게 됐다. 하지만 양측이 팽팽히 맞섰던 한 달 전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는 게 사측의 평가다.
먼저 파업 찬반투표가 한 달이나 이어져오면서 노조 내부의 파업 동력이 상당 부분 떨어진 것으로 사측은 파악하고 있다. 찬성률 55.9%도 압도적인 수치가 아니어서 막상 파업이 시작되면 동참하지 않을 조합원도 상당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현대중공업이 최근 단행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 조치가 노조의 파업 명분을 약하게 하고 있다. 사측이 임원 31%를 감축하는 등 스스로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어 노조로서도 무작정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노조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같은 울산 지역의 현대자동차 노조가 지난달 임단협에 합의한 것도 부담이 된다. 노조는 임금 13만2013원(기본급 대비 6.51%) 인상, 성과금 250% 이상, 호봉승급분 2만3000원을 5만원으로 인상,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사내하청노동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조직 슬림화 단행=현대중공업은 노사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사내 개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날도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영업조직을 통합해 ‘선박영업본부’를 출범시키는 등 조직 슬림화 조치를 단행했다. 울산에 있는 현대미포조선 선박영업부와 기본설계부가 서울 종로구 율곡로(계동) 사옥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조직 숫자도 부서별 기능 통합으로 줄여 7개 사업본부의 산하 부문 단위를 58개에서 45개로 감축했다. 전체 부서도 432개에서 406개로 줄였다. 커뮤니케이션팀 기획팀 재무팀 등 7개 지원 부서를 기획실 산하로 묶고 인원을 대폭 축소했다. 해외법인과 지사도 통합하거나 감축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사업 성과가 낮은 법인과 지사는 통합해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해외 주재원도 줄이고 필요하면 단기 파견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울산=조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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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첩첩산중… 사상 최악 적자 돌파 바쁜데 노조 파업 찬반투표 가결
입력 2014-10-23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