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행보… 北·美,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 신호

입력 2014-10-23 03:53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제프리 에드워드 파울씨 석방을 계기로 케네스 배씨와 매튜 토드 밀러씨 등 나머지 억류 미국인 2명도 풀려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파울씨 석방 과정에 미국이 고위급 특사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북·미 접촉은 없었지만 북한이 제시한 일정에 맞춰 미 국무부가 항공편을 준비하는 등 양국 간 긴밀한 공조는 있었다. 과거 미국 특사 파견 없이 북한이 억류 미국인을 석방할 때 일방적으로 추방했던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관광차 평양에 갔다가 억류된 6·25전쟁 참전용사 미국인 메릴 뉴먼씨, 2009년 말 북한에 무단 입국했다가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박씨는 북한 당국의 추방 결정 후 고려항공에 태워져 일방적으로 중국 베이징에 보내졌다. 이번에는 미국 군용기가 파울씨를 태우러 직접 평양 순안공항에 들어간 만큼 양국이 사전에 세밀한 협의를 했음을 시사한다.

정부 소식통은 22일 “미국이 주도해온 대북 제재로 압박을 받아온 북한으로선 어떻게든 미국과 대화의 끈을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訪南)을 통해 남한과 전격 대화에 나선 것처럼 이번 역시 미국을 향해 선제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이날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요청을 수용해 특별조치를 취한 점을 강조한 것도 미국과 관계 개선 의사를 적극 보인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북한이 민감해하는 ‘인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게 변수로 작용할 거란 전망이 많다. 12월 중순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EU)과 함께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인데 향후 결의안 수위에 따라 북측의 유화적 태도가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케네스 배씨, 토드 밀러씨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던 파울씨와 달리 이미 재판에 회부돼 각기 6년,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점도 관건이다.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북한이 쉽사리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태도 변화가 북·미 간 대화 분위기를 이끌고, 도발 자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2차 남북 고위급 접촉 개최 전망에 대해 성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30일 개최는 우리 측이 제안했지만 10월 말∼11월 초쯤 2차 접촉을 열자는 제의는 지난 4일 북측에서 한 것”이라며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김양건 당 비서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를 받고 내려온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판단과 결정이 중대하게 바뀔 변수가 현재 발생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2차 접촉의 선결조건처럼 주장하고 있는 대북전단(삐라) 살포 문제와 관련해선 “전단 문제는 과거 수없이 남북이 부딪혔던 사안이고 이 문제로 북한이 고위급 접촉 수용 자체를 번복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황 총정치국장의 ‘오솔길을 대통로로 열어가자’ 등 발언은 북한이 김정은정권 들어 처음으로 남한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상대가 좋은 뜻을 전달했으면 일단 선의로 이해하고 가급적 그런 방향에 맞춰 남북관계가 잘 전개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정 손병호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