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종이폭탄

입력 2014-10-23 02:10

남북 간에 체제 경쟁이 극심했던 1970년대 정부는 북한의 융단폭격식 삐라 살포에 골머리를 앓았다. 북한 삐라는 신문 1면에 보도될 정도로 당시 주요 뉴스거리였다. 정부는 해마다 북한 삐라 살포를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고, 삐라를 발견하면 인근 경찰서나 군에 신고하라고 계도활동을 펼쳤다. 삐라를 신고하면 연필과 공책 등을 상품으로 나눠줬고, 유공자로 표창하기도 했다.

계산서를 뜻하는 영어 빌(bill)의 일본어 발음에서 유래한 삐라의 전성시대는 6·25전쟁 때였다. “미군이 전쟁 발발 이후 휴전하기까지 뿌린 삐라만 25억장에 이른다. 이는 한반도 전역을 스무 겹 덮을 수 있는 엄청난 분량이었다.”(정용욱 ‘6·25전쟁과 삐라’) 유엔군은 적이 오래 간직하도록 담배를 말아 피울 수 있는 종이로 삐라를 만들기도 했다. 삐라를 종이폭탄이라고 했는데 사기를 꺾어 적의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실제 폭탄에 버금가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어렵지만 북한은 여전히 삐라를 뿌리고 있다. 북한이 지난 5, 6월 동안 남으로 내려보낸 삐라만 3만장이 넘는다. 생뚱맞게 탤런트 배용준을 모델로 내세운 삐라도 있다. 북한은 삐라를 특정 위치에 살포하기 위해 애드벌룬 형태의 열기구를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을 보낼 때 사용하는 대형 풍선에 비해서는 훨씬 앞선 기술이다.

대북전단 살포는 2004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정부가 주도했다. 그러다 이해 6월 남북이 심리전 중단에 합의하면서 정부 주도의 대북전단 살포는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5·24조치로 대북 심리전을 재개했으나 전단 살포는 제외했다. 그래서 대북전단 살포는 민간 몫이 됐다.

민간단체들은 매년 30차례 대북전단을 북으로 날려 보낸다. 한 번에 50만장을 보낸다고 하니 연간 1500만장이 보내지는 셈이다. 이 가운데 불과 10%정도만 북한에 떨어진다. 민간단체들은 오는 25일 또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했다. 전단을 살포하고 말고는 그들 자유지만 자제를 요청하는 정부 얘기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