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뤄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은 ‘카트’(포스터)가 22일 시사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는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고객님”이라며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더 마트’ 직원들의 교육장면으로 시작된다. “마트의 생명은 매출, 매출은 고객, 고객은 서비스”를 외치던 직원들은 어느 날,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통지를 받게 된다.
“회사가 잘 되면 저희도 잘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해고되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선희(염정아), 싱글맘 혜미(문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 88만원 세대 미진(천우희)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들이 힘을 합쳐 회사를 상대로 싸움에 나선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는 823만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에 가깝다. 이 가운데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를 넘어선 상태다. 이들은 극심한 고용불안에도 불구하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카트’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노동 현실의 문제를 대중영화의 품에 끌어안고자 기획됐다.
주류영화계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의 제작은 그동안 숱한 화제작을 내놓은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맡았다. 2009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로 데뷔한 부지영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다소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어려운 화법보다는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몇 년 간의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 현실적인 인물들이 탄생했다. 수학여행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들을 둔 선희, 아이의 어린이집 시간에 맞춰 매일 ‘칼퇴근’을 할 수밖에 없는 혜미, 청소원 아주머니들과 농담을 주고받지만 그들을 해고시켜야 하는 입장이 되는 동준 등.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천우희 김강우 등 스타배우들이 영화의 주제에 공감하고 적극 참여했다.
특히 인기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멤버 디오(본명 도경수·21)가 엄정아의 아들로 나와 비정규직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기여했다. 지난 7월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인기를 모은 디오는 ‘카트’로 영화에 데뷔했다.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30억원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셜펀딩을 통해 충당했다. 디오는 제작비 펀딩에 톡톡히 역할을 해냈다고 한다.
‘카트’는 해외에서 먼저 호평 받았다. 지난달 열린 제39회 미국 토론토국제영화제 ‘도시기행’ 섹션에 초청돼 “강렬한 드라마와 사회적 비판을 동시에 갖춘 동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오는 30일 개막되는 제34회 하와이국제영화제의 ‘스포트라이트 온 코리아’ 섹션에 초청됐다. “배우들의 완벽한 호흡이 돋보이는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는 게 초청 이유다.
부 감독은 “특정한 주의나 주장을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절박하고 아픈 현실을 정직하고 리얼하게 묘사하는 영화”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노동영화이자 가족영화이면서 성장영화라는 것이다.
11월 13일 개봉되는 ‘카트’가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103분. 12세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회사 잘되면 회사 좋을 뿐”… 상업영화가 그린 비정규직 인생
입력 2014-10-23 02:21 수정 2014-10-23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