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면, 이제는 우리나라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민으로 말이죠. 밤이든 낮이든 한국인이 일하지 않는 나라가 없게 됐습니다."
조규형(63)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재단 이사장실에서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현재 700만명의 동포가 세계 170개국에 나가 있다"며 "한반도 인구의 10분의 1이 밖에 나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1시간2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재외동포를 시혜를 베풀어 주는 대상으로 보던 정부 시각을 바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재외동포가 그리 많은지 몰랐다.
“국가별로 보면 우리가 네 번째쯤 된다. 중국 4500만명, 인도 2500만명, 이스라엘 유대인이 800만명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 퍼져 있는 나라는 우리와 중국뿐이다. 1864년 러시아 이주를 기점으로 이민 역사가 올해로 150년이 됐다.”
-우리 동포들만의 특징이 있나.
“모험을 해 성공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우리 민족이 한때 폐쇄적이고 쇄국적이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신라와 고려시대에 해외로 진출했던 DNA가 있다. 이게 발현되는 것 같다. 아프리카를 찾아가는 선진국은 우리 말고는 별로 없다. 모험을 하려는 용기와 위험을 감수하려는 DNA가 있다. 이게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철새들이 살아남듯 우리 동포들은 본능적으로 살아남는다.”
-성공 요인을 구체적으로 꼽는다면.
“우선 우리 동포들은 근면하고 교육열이 높다. 가령 중남미의 이민 1세대는 동대문에서 옷을 사다가 팔았다. 2세대는 현지에서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서 가 디자인을 배워 브라질 등에서 패션을 지배하는 큰 사업을 벌인다. 아버지 세대가 이뤄놓은 것을 토대로 아들 세대는 더 높은 교육을 받고 금융과 제도를 배우게 해 확 뛰어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한글학교가 대표적이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 1953개 한글학교가 만들어져 17만명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주말에 운영되는데 대부분 자발적이다. 정부가 30∼40%를 지원해주고 나머지는 선생님부터 자원봉사다. 우리 문화나 말을 지키기 위한 열의가 대단하다. 한류가 떠 한국 문화가 각국에서 유명해진 게 아니다. 한류 기반은 사실 동포들이 만들었다. 국악 공연과 한국 드라마, 불고기 등등…. 한류가 퍼진 자양분은 동포사회가 깔아 놓았다.”
-이사장 지론이 이제는 모국과 동포들이 상생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것인데.
“한상(韓商)들이 거부가 되고 큰 기업이 됐다. 국내 투자나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다. 한상대회를 하면 국내외에서 수천 명이 와 거래가 많이 이뤄진다. 우리의 경제영토 확장에 도움을 많이 준다. 국내 기업들도 동포를 찾아 거래를 해보려는 욕구가 강하다.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동해병기 법안이 통과된 게 대표적이다. 저도 외교관 출신이지만 대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현지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동포들이 상하원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고 청원을 넣어 이뤄진 것이다. 대한민국이 커지고 부강해지면 동포들도 주류 사회로 진출하기에 유리하다. 대우나 법적 권리 신장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정부도 국가 발전을 위해 전략적 시각으로 동포 문제를 다뤄야 한다. 동포를 국가 발전에 활용해야지 국내의 권리의무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 한인사회를 전체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 미국에서 제1차 풀뿌리운동이 있었는데 우리 재단이 도움도 줬다.”
-동포들이 모국 정부에 대해 불만도 많은 것 같다.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 가령 국적법도 그렇다. 이중국적을 허용해달라는 사람도 많고, 굳이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지역마다 원하는 게 다 다르다. 미국 동포들만을 위한 법을 만들기는 어렵다. 미국 동포들의 경우 우리 국적 때문에 차세대들이 공직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국적법은 18세 때 미국적이든 한국적이든 선택해야 하고 그걸 놓치면 한국적으로 본다. 미국 사관학교나 공직에 나갈 때 우리 국적을 갖고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중국적 연령을 낮춰주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국무총리 주관으로 외교부 등 관계부처에서 논의 중이다.”
-분열이 돼 있는 한인사회도 적지 않은데.
“국내 정치와 관련된 것은 아닌 것 같다. 현지 문제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토록 하고 있는데 한인회가 자생적 모임이어서 정부가 강제할 권한은 없다. 분규가 생길 경우 양쪽을 다 인정 안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차 뉴욕에 갔을 때 세월호 관련 시위가 있었다.
“이건 반정부가 아니라 나라를 부정하는 것이다. 한인회에서 반대 성명도 많이 냈고, 거기에 대해 항의한 사람도 많았다.”
-재외국민 투표율이 너무 낮은 거 아닌가.
“700만명 가운데 우리 국적을 갖고 있는 분이 280만명이고 18세 이상은 220만명이다. 미국 동포 한 분이 말씀하시길 한국에서 기표소를 대전, 부산에 한 개씩 갖다놓고 투표하라고 하면 국내 투표율도 10%가 안 될 거라고 하다라. 현재는 동포들이 투표를 하려면 투표소가 있는 지역을 등록 때 한 번, 투표 때 또 한 번 두 차례 가야 한다. 투표소를 늘리고 우편투표를 도입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을 하면 투표율이 많이 올라갈 것으로 본다.”
-올해 역점 사업은 무엇인가.
“한글교육이 중요하다. 또 재중동포의 정체성 유지 활동과 미주 동포들이 정치적으로 신장하는 문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재외동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동포들은 자기들이 고국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을 모국 동포들이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재외동포들이 우리 문화를 알리고 공공외교에 도움이 되는 자산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중국과 일본, CIS(독립국가연합) 동포들에게 역사적 채무도 있다. 과거 독립운동 자금도 중국 동포들이 냈고, 1970∼80년대 일본 동포들은 국내에 지원도 많이 했다.”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예산 부족이다. 이스라엘은 3억 달러를 쓴다. 우리는 지난해 500억원이 좀 안 됐고, 올해는 500억원은 넘을 것 같다. 박근혜정부 들어 한글학교 예산을 더 지원해 줬지만 재외동포 복지 예산은 많이 부족하다. 동포들이 원하는 것의 10%밖에 못 해주고 있다.”
조규형 이사장 누구인가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한국외대 서반아어과를 졸업한 뒤 1974년 외무고시 8회로 당시 외무부에 들어갔다. 남미과장과 중남미국장, 주멕시코·주브라질 대사를 지내 국내에서 손꼽히는 남미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대사 시절 멕시코에 한국 드라마와 K팝 등을 소개하고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면서 한류가 중남미 일대로 퍼지는 데 일조했다.
2000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차장으로 활동하며 북한 측 인사들을 수시로 접촉하는 등 북핵 관련 사안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이듬해 유치에 기여했다. 지난해 6월부터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동포들의 권익 향상뿐 아니라 국내 기업인들의 해외 진출에도 앞장서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22일 "외교부에서 보기 드물게 박력이 넘치고 업무 추진력이 뛰어난 인사"라며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탁월해 재외동포와 고국 간 가교 역할에 적임자"라고 말했다.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한민수 문화체육부장이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만나다
입력 2014-10-24 0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