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위험 공화국’이었다. 서울 신촌 일대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국적과 체류 기간은 달랐지만 “한국인의 안전의식은 매우 허술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거리에서는 위험천만한 상황들이 수시로 발생했고, 한국인들은 위험한 상황을 너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외국인들이 느낀 솔직한 소감이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공부 중인 벨기에인 베르트 레이센(26)씨는 지난겨울 본 일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골목길을 걷던 그는 근로자 두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전신주에 올라가 작업하는 모습을 봤다. 아래를 지나던 20대 여성이 마주 오는 차량을 피하려 전신주 가까이 다가간 순간 전신주 위에서 연장 하나가 불과 그와 50㎝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레이센씨는 21일 “자칫 큰 사고를 당할 뻔했지만 여성은 이어폰을 꽂고 있어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며 “연장을 떨어뜨린 근로자도 무심히 연장을 주워들더니 작업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등굣길 또한 아찔한 상황의 연속이다. 좁은 길을 지날 때마다 몸을 스치듯 지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놀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며칠 전 그는 신촌의 한 횡단보도를 건너다 배달 오토바이와 부딪혔다. 놀란 그가 소리를 질렀지만 이어폰을 꽂은 운전자는 이를 듣지 못한 듯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레이센씨는 “횡단보도를 지날 때 속도를 줄인다는 상식만 지켰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며 “사람을 치고도 아무런 사과도 없이 지나가버려 황당했다. 벨기에였다면 바로 오토바이 번호판 번호를 적고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안전에 대해 ‘100점 만점에 50점’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직접 사고를 목격한 적은 없지만 사고 일보 직전의 상황은 자주 봤다”며 “한국 사회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에 비해 안전 수준은 매우 뒤떨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후 홍대 입구를 찾은 러시아인 여행객 초이 올가(37·여)씨도 한국인들의 거친 운전습관을 지적했다. 그는 “배달 오토바이가 인도 위를 마구 질주할 때마다 공포를 느낀다”며 “러시아에서는 경찰 단속을 받는 위법행위임에도 한국에서는 일상인 것 같다. 주변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 놀랐다”고 말했다. 그의 동료인 코바레프(22)씨는 “좌회전을 하거나 차선 변경을 하면서 깜빡이를 켜지 않는 차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홍콩 관광객 마틴 웡(27)씨도 “밤늦게 술 취한 시민들이 차도에 내려서서 택시를 잡는 게 아슬아슬해 보였다”고 말했다.
일본인 유학생 A씨(여)는 “차들이 너무 빠르게 달려서 버스에 탈 때마다 무섭다”고 말했다. 도심에서 시속 100㎞ 이상으로 질주하거나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 급정거도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법규를 어기면 경찰이 바로 단속해 벌금을 매기거나 면허를 취소할 만큼 법 적용이 엄격하고 국민들도 이를 잘 지킨다”며 “한국은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을 거쳐 한국을 여행 중인 터키인 무스토파(21)씨는 “한밤중 홍대나 강남 등 번화가에 모인 인파를 보고 치안만큼은 한국이 중국이나 터키보다 안전한 것으로 느꼈다”며 “그러나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소식을 듣고 생각해보니 준법의식이나 안전 상식은 중국과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유소 내 흡연이나 무단횡단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조성은 전수민 양민철 기자 jse130801@kmib.co.kr
[우리 안의 안전불감증] (2)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인의 안전불감증
입력 2014-10-22 0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