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에볼라 저지 선봉役… 미국엔 경제봉쇄 해제 압력

입력 2014-10-22 02:43
현재까지 에볼라출혈열이 창궐한 기니와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에 가장 많은 의료 인력을 파견한 나라는 쿠바다. 쿠바는 의사 50명과 간호사 100명을 포함해 165명의 의료진을 이미 보냈다. 교육·훈련이 끝나는 대로 300명을 추가 파견할 예정이다. 미국이 3000명의 군 병력을 배치할 예정이지만 이 중 의료 인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에볼라 환자 치료 중 의료진이 감염된 사례가 늘어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파견 의료 인력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4400명의 에볼라 사망자 중 239명이 의사나 간호사다. 이런 현실에서 쿠바의 ‘선도적 역할’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에볼라 사태’에 선제 대응한 쿠바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마땅히 칭찬받고 본보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NYT는 ‘에볼라에 관한 쿠바의 인상적 역할’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가난한 섬나라인 쿠바가 아프리카 피해국 현장에 수백 명의 의료 인력을 파견했다면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퇴치하려는 국가들 가운데 가장 견실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과 선진국들이 기금 지원에 ‘자족’하고 있는 반면 쿠바와 소수의 비정부기구(NGO)만이 현장에 가장 필요한 의료 인력을 보내기로 했다고 지적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지난달 뉴욕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무장관을 만나 시에라리온에 의료진을 파견키로 한 것을 치하하며 “다른 나라들은 쿠바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쿠바의 모범적인 에볼라 퇴치 활동이 미-쿠바 관계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NYT는 사설에서 “에볼라 문제에서 주요 기여국인 미국 정부가 가장 용감한 기여국인 쿠바와 외교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수치”라고 비판했다. NYT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엠바고)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으로 톤이 높다. 이 신문은 서아프리카에 파견된 미군 병력은 쿠바의 의료 인력이 에볼라에 감염됐을 경우 현지의 미 국방부 치료센터를 이용하도록 하거나 현장 철수를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바 측도 미국과의 협력에 적극적이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지난주 언론 기고를 통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은 ‘인류 연대(solidarity)’를 보여주는 모범”이라며 “에볼라와의 전쟁을 위해 미국과 쿠바가 비록 한시적이나마 불화를 제쳐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 정계에서 영향력이 큰 쿠바계 주민들의 반발 등을 의식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른 시일 내 경제봉쇄 조치를 해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에볼라 대응을 위한 긴요한 협력 체제 구축 등이 양국 관계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