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반기문의 39.7% 지지도

입력 2014-10-22 02:13

1990년대 박찬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95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초반에 민주당 조순과 민자당 정원식을 압도했다. 하지만 정계에서 은퇴해 있던 김대중의 조순 지원유세가 시작되면서 지지도가 급락해 2위로 낙선했다. 그 후 민자당에 입당한 박찬종은 9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인제와 지지도 1, 2위를 다퉜다. 그러나 후보는 당 조직을 장악한 이회창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이인제는 97년 탈당해 독자 출마했으나 실패했고, 그 뒤 민주당에 들어가 재기를 노렸다. 2002년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초기 이인제는 지지도에서 노무현을 4대 1 정도로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노무현의 광주대첩에 발목 잡혀 그에게 후보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 무렵 무소속이던 정몽준의 지지도가 월드컵 바람을 타고 급등했다. 노무현의 대안으로 그가 거론되자 지지도는 노무현을 더블스코어 차로 앞섰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통한 두 사람 간 후보단일화에선 근소한 차로 패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고건의 지지도가 폭등했다. 2006년 중반 이후 상당기간 이명박과 박근혜를 크게 리드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지지도가 급락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새정치를 표방한 안철수 역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와 문재인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문재인과의 야권후보단일화 협상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올 들어 야당과 손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으나 7·30재보선에 패하면서 정치생명을 위협받게 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길리서치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39.7%로 단연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발표됐다. 박원순 13.5%, 문재인 9.3%, 김무성 4.9%였다. 반 총장은 그동안 대통령에 뜻이 없음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행여라도 욕심 부리지 말고 그런 생각을 끝까지 유지했으면 좋겠다. 고공 행진하는 지지도는 한낱 신기루일 가능성이 있다.

대선은 어차피 세력 대 세력의 한판승부이기 때문에 특정인의 지지도는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크게 빛낸 것만으로도 아주 멋진 인생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