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나미] 쭉정이같은 나라는 안 됐으면

입력 2014-10-22 02:30

요즘 노인 중에는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자식들이 제일 무섭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학대는 물론 목숨을 잃을까봐 혹은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감옥에 넣을까봐 공포에 떤다.

ㄱ씨는 남편이 죽자마자 뒷바라지를 해온 아들에게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재산을 모두 아들에게 양도한다는 유서를 아버지에게서 받고는 멀쩡한 ㄱ씨를 치매환자로 몰기도 했다.

ㄴ씨는 남편이 병을 얻어 오래 살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젊은 아들로부터 재산을 넘기라는 협박을 당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있다 무슨 일이 닥칠까봐 두려워 ㄴ씨는 거처를 숨기고 산다.

ㄷ씨는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서른이 넘도록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백수생활을 하다 결혼을 시켜 달라며 결혼비용과 집 값 등을 집요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탈 자동차 값은 물론 제 아내의 대학원 등록금과 피트니스센터 비용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자식들에게 시달리다 몰래 이사를 가거나 난동을 부려 경찰을 부르는 장면은 부촌과 빈촌 모두 유사하다.

자식들이 제일 무섭다는 이들 적지 않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한탄이야 공자 시절부터 있었지만, 최근의 갈등은 노인들의 존엄과 생명을 위협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자녀에게 효도의 가치를 가르치지 못한 개인이나 사회의 책임이 무겁다. “공자가 죽어야 된다” “충효사상 때문에 근대화가 늦어졌다” “내리사랑이니 효도를 강요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등을 이야기하는 지식인들, “꼰대들은 다 죽어야 된다”는 식으로 막말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늙은 부모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 상식(?)이다. 독립적으로 살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걸고, 그만큼 자식들에게 많은 기대를 해 상처를 주고받는 노부모들의 책임도 물론 크다. 과거에는 자식이 노후 보험이었지만, 그렇게 주장하다가는 가정파괴범 취급받을까 걱정된다. 세습자본가들 일부를 빼고는 대부분 자산은 노인 세대들이 갖고 있는데, 젊은 세대는 월급조차 쉽지 않은 경제적 곤궁층이라는 사실도 큰 이유다. 백세 시대라 아플까 재산을 내놓지 않으려 하는 노인들과, 미래가 없으니 어서 빨리 부모가 죽거나 재산을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젊은이들의 충돌현상이다.

어려서부터 독립심과 노동윤리 키워줘야

이런 세태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독립심과 노동 윤리를 키워주는 것이 긴요하다. 공부만 열심히 하고 가족으로서 의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은 절대 금기다. 부모가 주는 돈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부모부터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자식들이 사치스럽게 살면서 공돈과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이 급선무다. 월급을 받거나 사업을 시작하면 빠른 시일 내에 부모 도움 없이 단단하게 자립할 수 있는 사회라면 굳이 부모를 협박해서까지 유산을 받으려 하겠는가.

지난 수십년, 고성장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일은 오늘보다 항상 더 좋아질 것이라 착각하며 살았다. 어찌 보면 베이비부머 세대들 이전 세대는 지금 세대에 비해 없이 살고 결코 안전하고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희망이 있어서 견딜 수 있는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은 참 편안한데 왜 그렇게 나약하지 하고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이 쉽게 포기하고 퇴행하는 이유의 근저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구조가 숨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사회에는 부침이 있어서 발전이 있으면 쇠락도 있게 마련이다. 다만 아직 열매도 맺지 않았는데 그냥 지고 마는 쭉정이 같은 국가가 될까 마음이 무겁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해야 노인이건 젊은이건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모와 자식이 원수가 될 정도로 불행한 사회에서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