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근무할 때였다. 집 앞 카페에서 작업하곤 했는데 손님이 드문 아침마다 점장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레 친해졌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카페가 드물었고 낮 시간에는 어르신 손님이 많았다. 점장님은 커피가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메뉴를 일일이 설명했고 귀찮아할 법한 질문에도 웃음으로 대했다.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카페 뒤뜰에서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는데 마침 점장님이 지나고 있었다. 무얼 하느냐는 물음에 나는 “지금까지 여기 나무가 있는 줄 몰랐어요” 했다. 그러자 점장님이 말했다. “이 나무가 ‘배롱나무’래요. 우리 가게에 원예를 전공한 알바생이 있는데 알려줬어요. 그 학생 이름이 하늘인데 예쁘죠? 하늘이 꽃과 나무를 공부한다니!”
점장님과의 대화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사람들과 자주 만나지 않던, 어쩌면 소외되고 외로웠을 그때의 일상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점장님은 내가 앉던 창가 자리를 ‘작가님 자리’라고 불렀다.
어느 일요일 점장님은 혼자 밥 먹지 말고 함께하자며 칼국수 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날 점장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무용을 하고 싶었지만 엄격한 아버지 아래 자라서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무용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녀는 반대했다. 딸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무용을 연습했고 마침내 그녀 마음을 움직였다. “하고 싶은 거 한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지 알아요. 그래서 저도 포기했고요. 막상 우리 딸이 그 어려운 걸 하겠다니 말리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점장님은 내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어요”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 글을 쓰고 싶다고 회사를 나왔지만 끝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던 참이었다.
그해 가을 나는 그 카페에서 한 권의 에세이집을 썼다. 그리고 여전히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며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 이제는 이사를 가서 그곳에 예전처럼 자주 들르지 못하지만 가끔 근처에 갈 때면 꼭 점장님을 만나러 간다. 배롱나무가 있고 하늘이라는 알바생이 있던 그 따뜻한 카페로!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배롱나무가 있는 카페
입력 2014-10-22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