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을 만든 윤호진(66) 연출이 8년 만에 신작 뮤지컬 ‘보이첵’을 최근 무대에 올렸다. 다음 달 8일까지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독일의 천재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1813∼1837)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그간 원작은 연극과 무용, 오페라로 만들어져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고 이번에 세계 최초로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윤호진과 뷔히너라는 두 거장의 이름만으로도 제작단계부터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다.
내용은 이렇다. 말단 군인인 보이첵은 연인 마리와 두 사람의 아기 알렉스를 위해 완두콩만 먹고 살아가는 생체 실험에 참여한다. 삶을 겨우 연명하며 점차 피폐해지는 그는 정신을 차리기조차 어려운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다. 동시에 자신이 모시는 군악대장과 마리의 외도를 알게 된다. 충격과 배신감을 맨몸으로 끌어안아야 하는 그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광기어린 괴물의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한 걸음 앞으로도 나갈 수 없는 나약한 모습으로, 보이첵은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인간의 참혹한 모습 그 자체다.
원작은 처절하고 비극성이 극대화돼있다. 그러나 이를 고스란히 투영시키기에 뮤지컬 ‘보이첵’은 오히려 과도하게 무게감을 줄인 듯하다. 갈대숲과 간결한 컨테이너형 무대 세트는 세련미가 살아있지만 공연 중 공간을 백배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마을 축제 장면(1막)이나, 보이첵이 칼을 사기 위해 상점을 방문하는 장면(2막) 등의 구성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아낙들의 합창은 아름답긴 하나 개연성이 떨어지고, 1막과 2막 초반에 등장하는 ‘민주주의를 위하여’라는 앙상블 곡은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극 후반으로 갈수록 벼랑 끝에 몰리는 주인공 보이첵처럼 작품 또한 갈피를 잃는 듯한 느낌이다. 원작이 사회 부조리와 억압 등을 세밀하게 표현했다면 작품은 한 가정의 파멸에 집중했다. 가창력이 돋보이거나 눈길을 잡는 절정의 장면을 꼽을 수 없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곡들이 극중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심심한 가사와 어우러지며 귀를 당기지 못한다. 작곡을 맡은 영국의 인디 밴드 싱잉 로인스가 깊이보단 대중성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
윤호진 특유의 강렬하고 힘 있는 연출과 사회를 훑는 비판의식 등을 기대하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다소 김빠질 수 있겠다. 다만 주인공 보이첵으로 분하기 위해 완두콩만 먹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했다는 김다현(34), 김수용(38) 두 배우의 열정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4만∼8만원(02-2002-0114).
김미나 기자
무게감 줄어든 ‘보이첵’… 비판의식이 옅다
입력 2014-10-22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