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인 표적항암제의 등장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진료하는 의사들의 업무 방식을 크게 바꿔 놓았다. 또한 기존의 의사와 환자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1년 이전에는 모든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를 진단 후 즉시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여야 했기 때문에 의사들은 주로 무균병실과 수술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효과가 좋은 표적항암제 글리벡, 타시그나, 스프라이셀, 슈펙트, 보슬립, 이클루시그의 연이은 출현으로 이식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입원하는 환자는 크게 줄어 의사들은 진료 이외의 의학 연구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됐다.
이식이 주요한 치료법이 되었던 시절에는 △이식을 언제 할 것인지 여부 △골수를 채취할 것인지 여부 △말초혈 조혈모세포를 수집해 이식에 이용할 것인지 여부 △형제 이식을 할 것인지의 여부 △비혈연간 이식 가능 여부 △어떤 항암제를 사용할 것인지 여부 등과 같은 치료 과정 중의 많은 중요한 결정 모두가 전적으로 의사의 책임 하에 있었다. 하지만 표적항암제 치료는 아무리 의사가 치밀하게 계획하고 처방하더라도 환자가 정확한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효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환자의 복약 순응도가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됐다. 즉, 평생 동안 매일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용량을 복용해야만 효과를 얻고 유지할 수 있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의 표적항암제 치료법은 정확하게 필요한 약을 처방해야 하는 의사의 실력뿐 아니라, 환자의 규칙적인 복약 습관이 치료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부각됐다. 이에 따라 과거에 비해 환자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한 교육이 더 필요하게 됐다. 2010년 영국의 연구진이 특수 고안된 기기를 이용해 조사한 ‘글리벡 복약 순응도’를 보면 의사가 처방한 글리벡의 90% 이상을 복용한 환자는 단지 7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환자 4명 중 1명은 처방된 항암제의 적량을 복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환자들의 장기간 치료 효과는 현저하게 저하됨이 보고된 바 있다. 글리벡으로 처음 치료를 시작한 363명의 한국인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지난 7년간의 치료 결과를 보고한 서울성모병원의 자료를 보면 7년 장기생존율은 94%에 달해, 해마다 약 1% 미만의 환자만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기간 중 글리벡에 효과를 보아 계속 치료를 유지하며 생존하고 있는 환자는 71%에 불과했다. 즉 아무리 효과가 좋은 표적항암제라 하더라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다면 효과를 볼 수 없고 장기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비싼 표적항암제를 다국적제약사로부터 국가 세금을 들여 수입한 후 환자에게 건강보험 급여로 값싸게 공급하지만 환자들이 제때 복용하지 않아 버려진다면 국가 건강보험 재정의 막대한 낭비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표적항암제에 대한 복약 순응도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2005년 이후 필자의 병원은 복약 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환자와의 교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매년 9월 22일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사를 통해 표적항암제의 정확한 복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만성골수성백혈병을 포함한 다양한 암 질환에서 매일 경구 복용해야 하는 표적항암제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해당 환자들의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 국가 의료비용의 절감을 위해서라도 국가 차원의 항암제 복약 순응도 증대를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동욱<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김동욱 교수의 백혈병 이야기] 국가차원 항암제 복약 순응도 증대 노력 절실
입력 2014-10-21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