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로서, 주부로서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암’이라는 진단명에 나 자신뿐 아니라 모두가 믿지 못했습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고, 거짓말, 꿈인가 싶었습니다.”
12년 전 위암 4기 진단 받았던 심순복(위암환우회 회장)씨, 4기는 흔히 ‘말기’라고 부를 만큼 심각한 단계다. 특히 그녀는 종양이 위 주변 장기와 임파선까지 침범한 진행성 위암이었다. ‘암’ 선고를 내린 당시 의료진은 그녀에게 살 수 있는 날이 5개월 안팎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든 치료를 포기하던 순간에 심씨는 아들의 말을 듣고 치료결심을 세웠다.
“아들의 말이 지금은 학생으로서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할 줄도 모르겠고,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만약 엄마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치료도 안받고 돌아가신다면 훗날 자신의 인생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아들에게 슬픈 기억을 남길 수 없다는 생각에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심순복씨는 아산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외과, 종양내과 돌아가며 절제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암세포가 임파선까지 전이된 그녀는 이미 수술할 수 있는 시기를 지났기 때문에 생존기간을 늘리는 항암치료를 우선적으로 시행했다. 아홉 차례나 이어진 힘든 치료였다. 정신적, 육체적 힘든 시기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겪어야했던 고통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어렵게 항암 치료를 마치고 당시 주치의였던 강윤구 종양내과 교수로부터 수술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수술할 수 있다는 기쁨이나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배짱도 항암치료로 지친 그녀에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심씨는 “수술날짜를 잡고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혹시…’하는 생각에 장롱 안에 묵은 옷과 이불, 주방 그릇, 책장의 묵은 책과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만의 하나 혹시 내가 죽더라도 남은 가족들이 엄마의 빈자리와 흔적을 느끼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생활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목록을 적고 견출지를 붙여뒀다. 수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문제는 수술 후 약해진 몸을 완전히 회복하는 일이었다. 당시 그녀의 몸은 항암치료 직후 바로 이어진 수술로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수술의 성공과 환자의 회복력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항암치료로 전신이 약해진 암환자는 더욱 그러하다. 암환자는 수술 전보다 수술 후가 후유증으로 인해 더 아플 수 있다. 심씨도 마찬가지였다. 심씨는 “9차례의 항암치료 직후 수술이여서 고통이 더 컸다. ‘다시 살았구나’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배와 가슴에 배 속 불순물을 뽑아내기 위해 줄줄이 달아놓은 튜브들로 많이 힘들었다. 야윈 몸으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칼로 도려내는 통증을 겪었다. 한층 계단의 수가 왜 그렇게 놓고 많게 느껴지던지 주저 않고 운적도 많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투병생활 5년 후 심순복씨는 강윤구 교수로부터 ‘완치’라는 말을 들었다. 또 지난해 검진결과에서도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 진행성 위암을 진단받고 완치하기까지 12년이 지났다. 그녀는 지금 투병중인 모든 환우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환우회 회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는 막연한 두려움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심씨는 “암으로 죽기도 하지만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절망감이 우리들을 더 죽음으로 몰아놓는다. 어떤 경우라도 암이라는 절망에 나를 가두지 말고 내가 선택과 병원과 의료진을 전적으로 믿고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의 끈을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심순복씨의 위암 극복 스토리] 9차례 항암치료 힘겨운 재활 눈물로 버텨… 진단 5년만에 완치 성공
입력 2014-10-21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