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청와대 이재만 비서관인데…”에 이어 “나 박근혜 대통령 상임특보 김○○인데…”까지. 청와대와 정권 실세를 사칭하는 권력형 사기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 초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인사 청탁이라고 속여 대우건설에 취업하고 KT에 취업을 시도한 희대의 사기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70대 할머니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들먹이며 수억원을 받아 가로채려다 20일 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치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김모(74)씨는 2011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대통령 상임특보 등을 사칭해 최모씨 등 3명에게서 로비자금 명목으로 3억17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생일에 맞춰 보낸 것처럼 ‘축 생신, 대통령 박근혜’라고 적힌 화분을 사무실에 갖다 놓기도 했다.
대통령과 청와대 실세를 들먹이는 이런 고전적 사기 수법은 이전 정부에서도 늘 있었다. 문제는 박근혜정부 2년차인 올 들어 유난히 많아졌다는 데 있다. 권력형 사기 건수는 지난해 미미했지만 올해 벌써 14건이나 적발됐다. 지난 4월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사칭한 30대가 자녀 취업 등을 미끼로 2억300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덜미가 잡혔고, 8월에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실행단장이라며 채용을 미끼로 3명에게 수백만원을 뜯어낸 50대가 붙잡혔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지난 2일 이재만 비서관을 빙자해 대기업에 취업한 사기사건일 것이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대통령의 젊은 ‘가신 3인방’ 중 한 사람을 사칭한 50대 사기꾼에게 속아 간부로 채용하거나 채용하려 한 사건은 웃어넘길 수 없는 촌극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의 개인사 특성상 가족보다는 측근을 사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측근이면 무엇이든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구조와 보은인사, 낙하산인사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의 산하기관 재취업이 봉쇄되자 공공기관에는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둥지를 틀었고 금융기관에도 ‘정피아 낙하산’이 쏟아졌다. 청와대와 연줄이 닿은 인사들이 공공이든 민간이든 영역을 가리지 않고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다. 전문성이나 자질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권력이면 다 통하는 세태니 실세를 가장한 사기 행각이 판을 치는 것이 아닌가. 검찰은 우리 사회를 좀먹는 권력형 사기를 뿌리 뽑아야 한다. 청와대도 이런 사건들을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사설] 청와대·대통령 들먹이는 사기사건 여전한 까닭
입력 2014-10-21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