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토종 스포츠브랜드 육성 요원한가

입력 2014-10-21 02:03

많은 도시와 국가에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축구 등 세계적인 이벤트 개최를 위해 경기장과 숙박시설, 도로 등을 신설·보수하면서 급속한 도시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다. 해당 자치단체는 대회 개최 명분으로 짧은 기간에 국고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스포츠 이벤트 유치는 매우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유치도시 정치인들은 대회 개최로 자신을 한껏 부각시킬 수 있어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가 된다. 개발도상국 정치 지도자들이 각종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그랬다. 대회 개최 후 국가 이미지와 국가 브랜드가 단숨에 고양되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똑똑한 국가는 스포츠 이벤트를 일회성 행사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또 하나의 먹거리를 창조한다. 바로 자국의 스포츠 브랜드다. 독일의 아디다스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부터 등장해 1972년 뮌헨올림픽을 발판 삼아 급성장했다. 일본의 미즈노와 아식스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터전을 닦았다. 후발 주자인 미국의 나이키는 1984년 LA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거치며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성가를 높였다.

올림픽에서 토종브랜드 못 키운 한국

중국도 자국 스포츠 브랜드 육성에 적극적이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361°’라는 스포츠 브랜드가 ‘프레스티지 스폰서’로 참여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주요 스폰서 15개 업체 가운데 스포츠용품 브랜드는 중국 기업 361°뿐이다. 무려 1500만 달러를 조직위에 주고 따낸 성과다. 361°는 4년 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공식 스폰서가 되면서 자국 내 스포츠용품 3위 업체로 급성장했다. 1만1000여명의 인천아시안게임 자원봉사자들은 의미도 모른 채 361°라는 로고가 박힌 모자와 티셔츠, 바지, 신발을 신고 대회장을 누비며 브랜드 홍보에 앞장섰다. 앞서 중국은 1984년 LA올림픽 남자 체조 3관왕인 리닝이 은퇴 후 ‘리닝’이라는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자 국가 차원에서 육성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중국 대표선수들에게 리닝 브랜드 의류를 입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성화점화자로 리닝을 등장시켜 또 한번 브랜드 도약을 도와줬다.

올림픽과 월드컵축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특급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한 것으로만 따지면 한국은 이미 여러 개의 스포츠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외국 브랜드만 판을 칠 뿐 토종 스포츠 브랜드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토종 브랜드를 만들어 글로벌화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울올림픽 전후로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프로스펙스, 액티브, 라피도 등의 토종 스포츠 브랜드가 론칭돼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벌인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중국 일본 미국 시장에 비해 국내 시장이 좁은 탓이었는지 몰라도 토종 브랜드의 성장은 더디었고, 지금은 외국 브랜드에 국내 스포츠 의류 및 용품 시장을 송두리째 내주고 말았다.

평창올림픽은 마케팅의 또 다른 기회

토종 브랜드가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미국 일본에 이어 3대 골프용품 시장이 된 한국에는 ‘MFS’라는 골프클럽 제조사와 ‘볼빅’이라는 골프볼 제조사가 국제적인 브랜드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비록 내수 시장은 좁지만 이들 토종 브랜드는 기술력과 품질을 무기로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의 자동차, 전자, 화장품 산업 등이 글로벌 브랜드로 급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토종 스포츠 브랜드의 육성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제 곧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올림픽은 일차적으로 최고 기량을 갖춘 운동선수들의 각축장이지만 글로벌 기업들엔 마케팅 전장이기도 하다. 이 좋은 기회마저 놓친다면 후손들은 이 시대 모두의 무능함에 대해 두고두고 힐난할 것만 같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