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공연장 추락사고] 4명의 안전요원,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

입력 2014-10-20 03:40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환풍구 추락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 관계자들이 19일 테크노밸리 공공지원센터 내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지원본부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환풍구 추락사고는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대형 참사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행사계획서에만 존재했던 안전요원은 안전교육 한 번 받지 않은 평범한 직원이었다. 자신이 안전요원으로 지정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공연 주관사는 더 많은 관람객을 동원하기 위해 공연을 며칠 앞두고 무대 위치를 변경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사고 환풍구는 무대 뒤에 있어야 했다. 경찰은 공연장 안전대책부터 환풍구 철제 덮개의 부실시공 여부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드러나는 ‘주먹구구’식 행사 진행 정황=사고 현장에 있던 행사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부터 계약직 프리랜서까지 포함해 모두 38명이었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에서는 모두 16명의 직원이 나왔다. 이들은 공연장 한켠에 있는 홍보 부스에서 주로 기업 홍보활동을 벌였다. 공연 대행사 직원 11명은 무대 주변 관리 및 이벤트 행사 진행을 맡았다. 주관사 이데일리는 행사 사회자 2명을 포함해 모두 11명의 직원이 나와 행사 진행 등을 맡았다.

행사계획서에 기재된 4명의 안전요원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 경찰 관계자는 19일 “안전요원으로 지정된 경기과기원 직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처음으로 지정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들 4명을 포함해 행사 전이나 도중에 안전교육을 받은 사람도 없었다. 행사계획서를 작성하고 4명의 안전요원을 지정한 것은 경기과기원이다.

무대 위치도 급하게 변경됐다. 공연 대행사에서 제출한 최초 공연계획서에는 사고가 발생한 환풍구가 무대 뒤편에 위치했다. 그러나 이달 초 현장 미팅에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무대 위치를 바꾸자’는 이데일리 측 제안에 따라 무대 위치가 변경됐다.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안전사고에 대비한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책임을 져야 할 행사 주최 측이 어디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판교테크노밸리 축제’ 행사 포스터에는 경기도·경기과기원이 주최하며 이데일리·이데일리TV가 행사를 주관한다고 명시돼 있다. 행사 플래카드에도 경기도·경기과기원·성남시가 주최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경기도·성남시 사고대책본부는 사고 다음날인 18일부터 “경기도와 성남시는 이번 행사를 주최해 달라는 어떤 요청도 받은 적이 없으며 지자체 동의 없이 주최자 명칭이 사용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행사 예산도 급히 축소됐다. 당초 주관사인 이데일리 측이 책정한 행사 예산은 2억원이었지만 공연 준비 과정에서 7000만원으로 축소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한편 경기과기원은 지난 10일 ‘참여 시민이 3000여명으로 예상되고 예산 부담을 줄이는 측면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사업’이라며 2000여만원을 지원하기로 하는 지원 의견서를 작성하고, 행사비 중 1960만원을 지원하는 내용의 문서를 이데일리에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고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현장에서 축사한 사실이 드러나 경기도·성남시가 이데일리 측에만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대해 성남시는 “지난 8월 이데일리 측으로부터 지원금 3000만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며 “지원 계획은 애초에 없었으며 시장 축사는 이데일리 측의 초청에 따른 것일 뿐 행사 주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한편 형사처벌 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무너진 십자 앵글, 부실여부 감식 중=경찰은 환풍구 철제 덮개의 붕괴 과정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기지방경찰청 합동으로 정밀 감식을 벌이고 있다. 경찰 확인 결과 철제 덮개 아래 십(十)자형으로 설치된 4개의 앵글 구조물 가운데 왼쪽 구조물이 부서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나머지 앵글 구조물 3개의 용접 상태, 강도 등을 정밀 감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해당 구조물이 설계대로 시공됐는지, 표준 제품을 사용했는지 등도 수사 중이다.

경찰은 행사 당일 단순 교통통제만 했을 뿐 안전업무 등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과기원은 경찰에 ‘교통질서 유지와 주변 순찰을 위한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경찰은 안전심의 대상 행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행정지도만 내리고 당일에는 지구대 순찰차 2대와 교통경찰차 1대만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예상 관객이 1000명 수준인 데다 행사 직전 700명으로 줄었기 때문에 경찰의 안전심의 대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성남=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