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열정, 실험정신.’
민간 비영리 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SBT·단장 김인희)의 정신을 압축하면 이렇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같은 굵직한 발레단 사이에서 고군분투해온 민간 발레단 SBT가 올해 창단 19주년을 맞았다. ‘백조의 호수’ ‘지젤’ 같은 로열티를 지불하는 클래식 작품을 주로 올리는 다른 발레단과 달리 SBT는 예술감독 제임스 전이 안무한 창작발레로 승부한다. 19주년 기념 ‘무브즈(MOVES)’ 공연을 앞둔 SBT의 걸어온 길과 현재를 짚어봤다.
◇국내 최초 창작발레 라이선스 해외 수출=1995년 창단된 SBT는 규모와 예산 면에서 여타 큰 발레단과는 차이가 있다. 차별화할 것은 ‘창작’뿐이었다. 그동안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으로 약 100편의 작품을 창작했다. 록 발레 ‘현존(BEING)’ ‘사계’ ‘라이프 이즈…’, 가족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대표작. 수준도 높았다. 2001년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국내 최초로 ‘사계’로 창작발레 라이선스를 해외에 수출했다.
발레 교육도 남다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홈리스 발레교육. 2010년 겨울부터 매주 한 번씩 노숙인 10여명을 대상으로 제임스 전 감독이 직접 발레를 가르치고 있다. 처음엔 외부 지원도 받았지만 올해부턴 지원도 끊긴 상태. 그래도 발레 수업은 계속된다. 제임스 전이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는 오히려 “이분들이 노숙인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는 것이 본업이다 보니 시간내기가 쉽지 않아 1주일에 한 번밖에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교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도 올랐다.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공연을 하는 ‘더불어 행복한 발레단’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SBT는 해외까지 뻗어나갔다. 2012년과 2013년 콜롬비아로 갔다. 마약과 빈곤, 성매매 등에 노출된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콜롬비아 정부의 문화예술사업의 하나. 현지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쳐주고, 공연도 올렸다.
◇토슈즈 벗어던진 모던발레 공연=SBT는 오는 24, 25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창단 19주년 기념 ‘무브즈’를 올린다. ‘이너무브즈(Inner Moves)’와 ‘레노스(Le Noces)’ 2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너무브즈는 일곱 커플의 무용수가 역동적인 움직임과 선을 강조한 안무를 선보인다. 레노스는 발레의 상징인 토슈즈를 벗고 기존 발레에서 볼 수 없는 파격적인 동작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이너무브즈는 제임스 전이 미국 네바다발레시어터에서 안무를 의뢰 받아 제작한 단막발레. ‘동서양의 조화’라는 큰 주제 아래 인간 내면의 일곱 가지 상태를 몸으로 해석한다. 음악 중 일부는 우리 전통가락이다. 2002년 초연 당시 ‘제임스 전의 모든 기량이 압축된 역작’이라는 호평을 받았으며, ‘생명의 선’에 이어 두 번째로 네바다발레시어터에 수출됐다.
레노스는 러시아 전통 결혼 풍습을 표현한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안무가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겪는 현실적 갈등을 표현했다.
김인희 단장은 “튀튀(발레복)와 토슈즈의 상징인 고전발레부터 토슈즈를 과감히 벗어 던진 모던발레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작품으로 기본을 탄탄히 다져왔다”며 “이번 작품에는 19년간의 도전과 열정이 묻어날 것”이라고 말했다(02-3442-2637). 2만∼5만원.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창작발레 100여편… 도전·열정·실험정신 빛났다
입력 2014-10-21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