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파괴, 잿빛 사진의 경고… 다큐 사진가 살가두 ‘창세기’ 展

입력 2014-10-21 03:57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가 지구 파괴를 경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사람들에게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진은 살가두가 2009년 남대서양에 위치한 사우스샌드위치제도의 자보도프스키섬과 비소코이섬 사이 빙하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 찍은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 아마조나스이미지스 제공
살가두가 2007년 촬영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남부의 소수민족 술마족과 물시족 여성. 이들은 아래 입술에 큰 접시를 끼우는 독특한 장식풍습을 지키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피곤하고 지루한 일이 사진가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불리는 브라질의 세바스치앙 살가두(70)는 자서전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세종문회화관에서 열린 살가두의 ‘제네시스’(창세기) 전을 보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살가두는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시작한 2004년 갈라파고스 제도의 이사벨라섬을 찾았다. 알세도라는 화산 근처에서 200㎏이 넘는 자이언트거북을 만났다. 이 거북은 살가두가 다가갈 때마다 도망쳤다.

그는 “녀석과 내가 서로 안면을 익히는 방법밖에 없겠구나”라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손바닥과 무릎으로 땅을 짚고 납작하게 엎드려 거북과 눈높이를 맞췄다. 거북이 경계를 풀고 살가두에게 다가오기까지 하루가 꼬박 걸렸다.

아프리카에선 물소 떼를 찍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주위를 맴돌았다.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면 물소 떼가 겁을 먹고 달아나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 조리개를 크게 열어놓고 물을 먹으려고 샘을 찾는 표범도 기다렸다.

이렇게 8년간 살가두는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미국 뉴욕 등을 거쳐 한국에서 245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사람 중심의 사진을 찍었던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선 자연에 집중했다.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것을 본 뒤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주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을 자연과 함께 보냈다. 그는 그곳을 “절반 이상이 우림으로 뒤덮인 완벽한 낙원”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군사 독재정권에 반대해 프랑스로 망명했던 그가 1990년대 다시 돌아왔을 땐 황폐한 땅으로 변해 있었다.

‘제네시스’ 프로젝트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준비했다. 칼라하리 사막, 인도네시아의 정글, 갈라파고스섬이나 북극 등 오지를 찾아 산과 사막, 바다 그리고 문명사회와 격리돼 있는 동물, 사람들을 담았다. 늘 그렇듯 흑백사진이었다.

그는 흑백사진을 “다양한 농도의 회색들로 그리는 추상화”라고 표현했다. 추상화 같은 흑백사진엔 긴 설명을 달지 않았다. 사진 속 그림에 이미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진은 글쓰기, 번역 없이도 세계 어디서나 읽을 수 있기에 더욱 더 힘 있는 글쓰기다.”(살가두)

살가두가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단하다. 간신히 남아 있는 잃어버린 세상의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인류가 어떤 위험에 빠져 있는지, 그리고 이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자는 것이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