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 닫는 기업들… ‘대못 규제’가 피터팬 증후군 불러

입력 2014-10-20 03:32 수정 2014-10-20 15:54

우리 산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커질 경우 규제가 급증하는 탓에 성장을 꺼린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우리 경제가 주요 대기업에만 의존하고 중견·중소기업이 제대로 커나가지 못하면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17일 강원도 춘천시 강촌에서 열린 기자단 추계 세미나에서 “중견기업의 대기업 진입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가 중견기업의 대기업 도약을 저해하는 피터팬 증후군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성장을 하지 말라고 정부가 권유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이 부회장은 대기업 집단을 규제하는 법률에 따라 기업 성장이 정체되는 현상을 근거로 들었다.

2008년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선정 기준을 자산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올렸을 때가 대표적이다. 2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가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되자 2008년을 기점으로 자산 2조∼5조원 미만 기업집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산 2조∼5조원 미만 기업집단 수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거의 변함이 없었지만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3개 늘었다. 규제가 없어지니 마음껏 투자를 하고 덩치를 키운 것이다.

반면 2003년 이후 매년 2∼8개씩 늘던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 수는 2008년 법 개정 이후 급격하게 정체됐다. 2012년과 지난해에는 단 하나도 늘지 않았다. 올해엔 되레 1곳이 줄었다. 경기 부진 등 여파도 있지만 자산 규모를 5조원 이하로 묶어 둬 새로운 규제를 피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은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고려했을 때 수년간 기업이 일정 수준의 자산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라며 “성장을 겁나게 하는 규제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자산 규모별 기업에 대한 규제 수는 자산 5000억원 이상∼2조원 미만 기업은 21개, 자산 5조원 미만 기업은 44개, 자산 10조원 미만 기업은 49개다.

중견기업들이 성장을 꺼리면서 30대 그룹의 변동성도 현저히 줄었다. 들고 나는 그룹이 거의 없는 것이다. 1997∼2003년에는 해마다 2∼4개 그룹이 꾸준히 새로 진입했지만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매년 신규 진입 그룹 수가 1개로 줄었다. 2011년엔 아예 없다.

여기에다 전경련은 국내 주요 대기업의 ‘제조업 편식’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을 10개 이상 보유한 주요 10개국의 평균 업종 수는 17.5개다. 이에 비해 우리는 10개에 그친다. 이 부회장은 “최근 국내 휴대전화,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주요 제조업이 부진하자 산업 전반이 불황에 빠진 것처럼 지나친 업종 편식은 불황 시 산업 전반에 헤징(위험분산)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 성장을 독려하기 위해 기업의 자산 액수가 규제 기준액을 넘어도 최초 3∼5년은 이전 수준의 규제로 유예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