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의 20년째 단골 관람객인 김정선(53·서울 가양동)씨는 올해에는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봄과 가을, 1년에 딱 두 차례 열리는 간송미술관의 기획전을 보기위해 해마다 길게 줄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이번 가을 전시는 예약제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시가 시작된 지난 12일부터 며칠동안 수십 번 전화를 걸었으나 계속 통화 중이어서 예약을 못했다.
26일까지 선보이는 간송미술관의 가을 전시 ‘추사정화전(秋史精華展)’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 가운데 정수만 꼽았다. 추사가 36세부터 70세에 이르기까지 쓴 작품 40여점을 통해 추사체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지난 3월 간송 소장품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첫 외부 나들이를 하느라 봄 전시를 건너뛰어 특히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올해는 미술관 밖 도로까지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은 사라졌다. 전시를 진행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은 미술관 1층에서만 전시를 열기 때문에 관람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관람 인원을 하루 500명으로 제한해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예약을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계속 통화 중이어서 예약을 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관람 예약이 폭주하면서 전화와 이메일은 모두 사실상 ‘불통’ 상태가 됐다. 재단 사무실도 ‘콜센터’가 된 듯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바람에 일일이 응대하느라 온종일 진땀을 뺐다. 예약은 전시 이틀만인 13일 오전 전체 일정 모두 마감됐다. 이후에도 관람 문의가 잇따라 논의 끝에 관람 인원을 50%가량, 하루 800명까지 늘렸으나 추가 예약분도 14일 오전에 동이 났다.
이제 더 이상의 추가 예약은 받지 않는다. 미처 예약을 하지 못한 관람객은 내년 전시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전화 예약은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받았고, 인터넷 예약은 재단 측이 제시하는 첨부파일 양식을 기입한 후 이메일로 보내면 접수하는 식이었다. 봄·가을 전시 때마다 길게 줄을 선 추억에 젖은 김씨 같은 ‘아날로그 관객’으로선 아쉬울 수밖에.
이번 해프닝은 소장품 이미지 유출을 우려해 미술관 홈페이지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간송의 폐쇄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앞으로 주요 전시는 DDP에서 진행하고 간송미술관은 연구 중심의 공간으로 운영될 계획이라고 한다. 기능과 역할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왕 전시를 열 바에야 관람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줌인! 문화] 수십미터 긴 줄 추억… 아날로그가 그리운 간송의 ‘불통’ 예약제
입력 2014-10-21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