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공연장 참사] 실무담당 직원 자살 파장…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보다 안전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

입력 2014-10-20 02:45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환풍구 추락사고와 관련해 행사 실무를 담당한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오모 과장이 한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기 직전 자신의 SNS에 남긴 글. 사고로 죽은 이들에게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에서 발생한 환풍구 추락사고에서도 한국사회의 ‘고질병’은 여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숱하게 논의됐던 안전 시스템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끔찍한 사고의 책임은 특정 개인에게 덧씌워졌다. 이번 사고에서도 축제 실무를 맡았던 30대 가장이 투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 전에 대형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사고 다음날인 18일 오전 7시15분쯤 행사 실무를 담당한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의 오모(37) 과장이 판교테크노밸리 한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그는 투신 직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며 “사고로 죽은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진정성은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적었다. 이어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행사 안전대책에 대한 공문을 기안하는 등 행사장 안전과 관련한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풍구 추락사고로 27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다음날 오전 2시부터 경기경찰청 수사본부에서 1시간20분가량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사무실로 복귀했지만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확보한 건물 내 CCTV 영상에는 오전 6시50분쯤 오씨가 사무실에서 나와 비상계단을 통해 10층 옥상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담겨 있다.

오 과장의 죽음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 구조됐다가 이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모 전 단원고 교감을 떠올리게 한다. 사고 직후 참사의 원인을 밝혀내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실무 담당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당시 강 전 교감은 유서에 “나만 살아서 미안하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고 썼다.

강 전 교감의 간절한 바람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전한 사회’로 이어지지 못했다. 구호는 요란했지만 실질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환풍구 추락사고 현장에서도 안전요원은 부족했고, 수천 명의 인파가 몰리는 공연장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지방자치단체의 매뉴얼은 엉성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땜질식 처방’으로 위기를 피하려는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제도 개선을 포함한 안전 시스템을 보다 면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뿌리 깊은 안전 불감증을 걷어낼 수 있는 의식 개혁도 필수요소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근식 교수는 “우리 사회는 압축적 성장을 겪다 보니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은 강하지만 이를 구조적으로 정착시키는 데는 서툴다”며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개인에 대한 책임추궁 강도만 강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