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동해 병기’ 이끈 美 버지니아주 한인회장 홍일송씨

입력 2014-10-20 02:59
홍일송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회장이 지난 9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동해 병기법안이 주의회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허란 인턴기자

지난 3월 28일 테리 매콜리프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가 주의회를 통과한 '동해 병기법안'에 서명했다. 주내 모든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를 함께 명기토록 하는 법이다. 이 법에 따라 지난 7월 1일부터 버지니아주에서 새 학기를 시작하는 모든 공립학교 학생은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배운다.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미국에서 어떻게 동해 병기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답은 버지니아 한인회의 '풀뿌리 정치'에 있다. 버지니아 한인회는 주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법안을 제안하고 설득작업에 매달렸다. 이를 이끈 이가 홍일송(51) 버지니아주 한인회장이다.

'2014년 세계한인회장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홍 회장을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믿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했다.

"크리스천이라면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해요. 저는 사춘기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가서 보니 우리 역사가 왜곡된 것이 많더군요. 일본군위안부나 동해 문제가 대표적이죠. 이렇게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는 일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홍 회장은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중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였다. 메릴랜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도 그의 관심은 여전히 한국에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85년 워싱턴지역 한인학생회 총학생회장이 된 뒤 미국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거북선을 만들어 참가한 것도 한국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97년부터는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이 운동을 주도한 HR121 범대책위원회 공동의장 및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결의안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것으로 2007년 7월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운동을 하면서 떠올린 게 동해 병기 운동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자꾸 독도를 걸고넘어지는데 거기에 맞설 수 있는 게 필요했거든요. 그게 바로 동해였습니다. 우리나라를 빼면 (거의) 전 세계가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잘못이죠. 일본이 식민지배 시절 역사를 왜곡한 거예요."

재미 일본인들도 선뜻 나서 도왔던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채택 운동보다 동해 병기 운동이 훨씬 더 어려웠다. 미국 의원들도 동해 병기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교과서를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한국인들이 미국 교과서를 바꾸겠다는 거잖아요. 반대하는 의원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라고 했어요."

홍 회장은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라 진실의 문을 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010년 버지니아주한인회장에 당선되면서 본격 행동에 나섰다. 먼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들을 상대로 '로비'에 나섰다. 주의회가 열리기 전 한인회원 1000명과 함께 의원들을 상대로 전화 설득에 나섰다. '로비 데이'도 만들어 한인들이 의원들을 찾아가 동해 병기법 통과를 호소했다. 글자 그대로 주의회 로비에서 기다리다 주의원들을 만나서 설득했다. 버지니아주 하원은 결국 지난 2월 6일 동해 병기법을 통과시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홍 회장의 목표는 전 세계 교과서가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쓰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2017년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동해 병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그는 그것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나의 구원보다 중요한 건 이웃의 구원이에요. 하나님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셨어요. 동해 병기도 같습니다. 한국인이 세계 속에서 억울한 마음 없이 어울리려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