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 민원 몸살… 너도 나도 “역사 새로 써 달라”

입력 2014-10-20 02:43 수정 2014-10-20 09:12

역사 논쟁이 과열되면서 ‘불똥’이 국사편찬위원회로 튀고 있다. 한국사를 조사·연구·편찬하는 국가기관에 자신만의 역사관을 피력하는 민원이 몰려들고 있어서다. 가문의 이야기부터 논쟁적 주제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지난 14일 오전 경기도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사무실. 민원 담당 연구사가 20여분째 붙들고 있는 전화기 너머에서는 중년 남성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만주에 있던 고조선이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얘기는 결국 고조선이 평안남도 일대의 작은 소국이었다는 식민사관 아닙니까?” 남성은 이어 “고조선의 평양 이동설이 중국에 동북공정의 빌미를 주고 있다”며 “동북아재단과 국사편찬위를 해체하라”고 고함을 쳤다. 담당 연구사는 “유물의 출토 분포와 기존 연구 등을 통해 이미 고조선의 평양 이동설은 주류로 인정받았다”며 “이분은 하도 여러 번 전화를 해 목소리도 낯익다”고 고개를 저었다.

역사적 논란과 맞닿아 있는 민원도 많다. 사육신 후손들과 일곱 번째 사육신으로 불리는 김문기 당시 공조판서 후손들의 민원이 대표적이다. 사육신에 유응부 대신 김문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수십년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애국가 작사가 논란도 오랜 민원거리 중 하나다. 특히 내년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애국가 작사가가 누군지 빨리 확정지어야 한다는 민원이 몰리고 있다. 애국가 작사가는 공식적으로는 ‘미상’으로 기록되지만, 학계에서는 대체로 윤치호설과 안창호설로 갈리고 있다. 국사편찬위는 50여년 전인 1955년 회의에서 11대 2로 윤치호 단독 작사설을 유력하다고 판단했으나 만장일치가 아니란 이유로 이를 확정짓지 않았다. 이후 애국가 작사가 목록에는 윤치호 안창호 김인식 최병헌 민영환 등이 올랐으나 정설은 아직 없다.

황당한 억측이나 자기주장도 많다. 전체 민원인의 절반 정도는 30분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자신만의 역사 이론을 펼친다. ‘추씨가 우리나라 모든 성씨들의 기원’이라거나, ‘한국이 1800년대까지 한반도가 아닌 중국 양쯔강(揚子江) 근처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민원실은 박사급 연구원들이 대다수인 국사편찬위에서 가장 고된 부서다. 80여명의 직원 가운데 담당 연구사 홀로 일주일에 수십 건의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 담당 연구사는 “역사는 학계를 통해 주장을 관철해야 하는데 민원으로 바꾸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