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북한 핵 위기를 막아냈던 북·미 간 제네바 기본합의가 체결된 지 21일로 20년이 된다.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되고 봉합하려는 시도가 20년째 이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20년 동안 북핵만 고도화됐을 뿐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 정권이 최근 들어 ‘대외관계 정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미국에서도 ‘대화 재개’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남북 관계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주변 정세들이 6자회담 재개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핵 문제 20년째 표류=외교가에서 지난 20년간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 움직임과 관련해 ‘북한 외교의 일방적 승리’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그동안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게 현실이다.
전쟁 위기까지 치달은 1차 북핵 위기가 1994년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 등의 경수로 및 중유 제공을 골자로 한 제네바 합의로 봉합될 때만 해도 북·미 간 ‘외교적 승리’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가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이 속았다는 게 드러났다.
이후 다자외교로 풀기 위해 2003년부터 북한과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이 시작됐고, 3년 뒤인 2005년에 ‘9·19공동성명’이 도출됐다. 9·19성명은 핵 포기 대가로 체제 보장 및 경제적 지원을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 모두 상대의 의무 불이행을 주장하다 2008년 12월 제6차 6자회담을 끝으로 공동성명은 파기됐다. 북한은 2차(2009년 5월), 3차(2013년 2월) 핵실험으로 핵 활동을 가속화했고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로 맞서 왔다.
◇비핵화 대화 다시 열릴 수 있을까=북한이 지난 3월 제4차 핵실험을 예고했지만 중국 등의 압박으로 유예된 상태다.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분주히 움직여 왔고, 우리 정부도 한국 나름대로의 북핵 해결 구상인 ‘코리안 포뮬러’를 만들어 대화 재개를 모색하고 있다. 코리안 포뮬러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을 천명하면 대화 재개와 함께 경제 지원에 나선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로선 미국이 대화 재개에 가장 소극적이지만 최근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 석방과 관련해 물밑 접촉을 하는 등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은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는 19일 “북한이 ‘급(級)’이 낮다며 거절했지만 미국이 최근 고위 인사의 방북을 제안하는 등 어떻게든 대화를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핵 문제가 중동 이슈에 밀려 있음에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 1기 대북제재 입안자들조차 북한과의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김정은 정권 들면서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비핵화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최근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에 합의하고, 북·일 협상 및 미국과의 뉴욕 채널 가동 등도 북한의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다.
때문에 일각에선 다음 달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이 만남과 2차 고위급 접촉, 북·일 협상 진척 정도에 따라 6자회담 재개 문제도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제네바 합의 20주년… 북핵 현주소와 전망] 북핵만 고도화… 문제 해결까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입력 2014-10-20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