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에는 네 종류가 있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면 금상첨화, 공부는 못해도 얼굴이 예쁘면 천만다행, 얼굴은 못생겼지만 공부라도 잘하면 구사일생, 얼굴도 못났는데 공부까지 못하면 설상가상. 너희 반은 어쩌냐, 죄다 설상가상이니….”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리 선생님 기준대로라면 ‘구사일생’ 등급이어서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 찍히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셀카’와도 거리가 멀다. 셀카가 10년 가까이 위세를 떨치고 있어도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건만, 셀카 문화는 또 한 번 불타오를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올해 최고의 히트상품이라는 ‘셀카봉’ 덕분이다.
야외에서 셀카봉을 처음 봤을 땐 등산용 스틱인 줄 알았다. 낚싯대나 지휘봉 같기도 했다. 판매하는 아저씨 말에 따르면 셀카봉은 평소 3∼4단으로 접어서 들고 다니다가 셀카를 찍을 때 펴면 1m 가까이 쭉 늘어나는 ‘요술봉’이다. 웬만한 팔 길이가 아니고는 셀카에 여행지를 배경으로 담을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한 획기적인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단점도 있다. 봉 끝에 휴대전화 고정용 거치대가 있지만 전화기가 추락하기 일쑤. 때문에 셀카봉의 탄생은 수리비용 증가를 노린 휴대전화 제조사의 음모라는 주장도 나왔다.
셀카봉의 핵심은 ‘남이 찍어준 것 같은 분위기 연출’이란다. 셀카봉을 안 든 것처럼 양팔이 나오게 하려면 무릎 사이에 셀카봉을 끼우라는데, 봉이 움직이지 않게 다리에 잔뜩 힘을 준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럽다. 결국 셀카봉의 장점은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어요?”라며 남에게 부탁할 일을 없앤 것 아닐까. 타인과의 접촉을 원천봉쇄하는 ‘혼자 놀기’의 진수다.
그런데 여성학에서는 셀카가 여성의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고 한다. “난 이대로 멋져”라며 스스로의 모습을 긍정함으로써 자신감을 얻는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수긍해 왔던 ‘구사일생’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셀카봉이라도 하나 사야 할까. 아서라, 손에 쥐고 다니다 무기로 오해나 사기 십상이겠다.
권혜숙 차장 hskwon@kmib.co.kr
[한마당-권혜숙] 셀카봉
입력 2014-10-20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