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시대의 요구 외면하는 국회

입력 2014-10-20 02:44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위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정부가 2012년 8월 입법예고한 뒤 그 이듬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여야가 본격적인 논의를 미룬 채 방치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 5월 임시국회 때 잠시 공론화됐던 것이 전부다.

지난 7월 10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청와대 3자회동 당시 김영란법의 8월 국회 처리가 합의됐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갈등이 핑계거리였다. 이어 지난달 30일 여야가 세월호법, 정부조직법, ‘유병언법’(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10월 ‘패키지 처리’에 합의할 당시에도 김영란법은 제외됐다. 더욱이 이 법안을 다룰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달 말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에나 법안소위를 구성할 예정이어서 당분간 깊이 있는 심의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언제쯤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지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여야는 김영란법을 경시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올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안 중 하나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김영란법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여야의 입장이 이심전심으로 통했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하다. 원안(原案)대로 통과될 경우 자신들이 김영란법의 피해자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꼼수를 쓰며 차일피일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김영란법에 대해 문제가 있다면서 원안을 후퇴시키는 쪽으로 손질하려 안달 아닌가. 때문에 일각에선 올해 김영란법의 국회 통과가 물 건너갔다는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정치권이 제기하는 이 법안의 문제점은 대략 이렇다. 공직자와 그 가족이 100만원 이상을 받으면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을 불문하고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며, 부정청탁 금지 조항은 국민 청원권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공직자의 가족이 공직자의 업무와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할 수 없게 한 데 대해선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논리를 편다. 또 ‘모든 공직자와 그 가족’으로 규정돼 있는 법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다는 점을 꼽는다. 공직자의 가족과 배우자 직계 혈족까지 합하면 그 수가 1000만명을 훌쩍 넘어 실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공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상에 포함시키는 건 신(新)연좌제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당한 반론이 아니다. 첫째, 김영란법을 둘러싼 위헌 논란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헌법학자 중 이 법안이 헌법과 배치된다고 보는 이는 소수다. 정치권이 직업선택의 자유 등 헌법을 들이대며 김영란법에 대해 이런저런 트집을 잡을 근거가 희박하다는 얘기다. 둘째, 공직자가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검은돈을 받지 못하도록 억지(抑止)함으로써 공직사회의 비리를 차단하고, 나아가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을 털어내려는 것이 김영란법의 근본 취지라는 점이다. 대가성 또는 직무 관련성이 있든 없든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으면 무조건 처벌하는 조항은 부정부패 일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관피아’의 적폐 척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고 하겠다.

무엇보다 국민 다수가 이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여야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상과제인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해선 공직자들의 청렴한 직업윤리 실천이 절실하며, 이를 위해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제정돼야 한다는 게 많은 국민들의 염원이다.

여야는 공히 정치혁신을 외치고 있다. 혁신의 핵심은 의원들의 기득권 내려놓기다. 김영란법 처리를 미루는 건 혁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김영란법 조속한 제정, 그것이 여야의 혁신 의지를 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