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지르고… 사과하고… 눈치 살피고

입력 2014-10-18 03:55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7일 국정감사대책회의에 참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상하이 개헌 발언’으로 정국에 파장을 일으켰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하루 만에 발을 뺐다. 집권여당 대표가 개헌에 부정적인 박근혜 대통령과 정반대편에 서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 안팎에서는 “일단 개헌 불가피론이란 불은 질렀는데 예상외로 정국 파장이 심해지자 김 대표가 회군(回軍)했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김 대표의 진화 노력에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그가 무심코 열어버린 개헌이라는 ‘판도라 상자’가 일파만파로 정치권을 뒤엎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국내도 아닌 외국에서 얘기를 너무 쉽게 꺼냈다”고 김 대표를 비판하고 나서 여당 내 계파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도 있다. ‘개헌 블랙홀론’을 펴온 박 대통령이 18일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이후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 대표, “불찰” “박 대통령께 죄송”=김 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당 국감대책회의에서 전날 상하이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중국에서 정식 기자간담회가 다 끝나고 식사하는 시간에 저와 같은 테이블에 있던 기자와 환담하던 중 개헌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면서 “민감한 사항에 대해 답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제 불찰”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께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회의에 참석하고 계신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휘발성이 큰 개헌 이슈를 언급한 것은 전적으로 불찰”이라고 거듭 강조한 뒤 “진의가 와전된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정기국회 뒤 개헌 논의가 봇물처럼 터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한 건데 마치 내가 개헌 논의를 촉발시킨 것처럼 보도됐다”는 것이다. 그는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우리 당에서 개헌 논의가 일절 없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불찰·사과 발언과 관련해서는 “스타일을 구긴 것이고, 바로 꼬리 내렸다고 해석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래도 내가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와 접촉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연락을 받은 적도 없고, 연락을 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불찰·사과 발언은 전적으로 김 대표의 결정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김 대표가 상하이 기자간담회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개헌 구상은 어느 정도 마무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과감히 회군한 가장 큰 이유는 박 대통령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이 외유 중인 상황에서 발언의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자 사태 수습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했음 직하다. 전략적인 ‘치고 빠지기’란 주장도 없지 않다. 개헌 이슈를 던져봤는데 청와대 반응이 워낙 부정적이라 접었다는 것이다.

◇개헌 논란 후폭풍=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개헌 불씨 살리기에 주력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 대표의 발언에 대해 “생각이 나와 아주 똑같다”고 환영했다. “올해 안에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돼야 한다”고도 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집권여당 대표가 개헌 얘기를 했다가 청와대 눈치를 보는, 이런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은 일제히 김 대표를 비판했다. 홍문종 의원은 “발언을 보면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개헌론으로 달려들자는 것처럼 보여 상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