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고통, 피하지 말고 쓰세요

입력 2014-10-18 02:02
일러스트=이영은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아현성결교회에서 열린 ‘필립 얀시 초청 콘퍼런스’에서 참석자들이 글쓰기 강연을 듣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한국교회 문화 속에서 글쓰기는 낯설다. 교회는 듣기와 말하기에 익숙하다. 수많은 설교와 기도회를 보라.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경건의 시간(QT)의 감상을 글로 기록하기 시작하더니 최근엔 성경 필사나 영성일기 쓰기가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했다. 기독교 관련 모임이나 세미나에도 '글쓰기 강좌'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 국민일보 주최로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아현성결교회에서 기독교 영성과 글쓰기에 대한 콘퍼런스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세계적 기독 저술가인 필립 얀시와 강준민(미국 새생명비전교회) 목사, 소설가 서영은이 각각 발표했다.

필립 얀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라

미화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야


얀시에 따르면 글쓰기는 고된 일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일이며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어떤 개인이든 글을 통해 전 세계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얀시는 "글쓰기를 통해 배운 교훈은 글 쓰는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독자가 갑이다. 글쓴이가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독자는 책을 덮는다"며 "이 때문에 작가는 두 가지 재료를 자신의 도구함에 넣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두 가지 필수 재료는 '무대(Platform)'와 '역동성(Movement)'이다. 우선 무대는 독자로 하여금 왜 내가 저자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가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전문가의 글과 말을 빌려오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다. 그는 고통에 대한 글을 쓸 때 한센병 전문의인 폴 브랜드 박사의 도움을 받았다. 어떤 분야의 글이나 책을 쓸 때 전문가를 찾아가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보편적 삶의 원리도 발견하게 된다.

또 글쓰기의 무대는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거나 그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그는 "겸손한 청지기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가 인터뷰했던 해비타트운동과 호스피스운동의 창시자 등은 모두 종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역동성이다. 인간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 피조물이다. 작가는 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얀시는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과 만나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한다"며 "모든 글에도 이런 서스펜스가 필요하다. 좋은 글은 긴장감을 살린다"고 말했다. 서스펜스는 기독교 관련 글을 쓸 때도 중요하다. 그는 "상당수 기독교 서적에는 스토리가 뻔한 간증 타입이 많다. 타락했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잘됐다는 식"이라며 "그러나 작가는 좀더 현실적이어야 한다. 미화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빛을 비추어야 한다"고도 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하나같이 문제투성이다. 어쩌면 우리 자신과 같은 사람이다. 얀시는 "이런 사실은 하나님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스토리와 비유는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했다.

"예수님은 생애 동안 183회의 질문을 받았고 딱 세 번 답을 하셨어요. 나머지는 무시하거나 재질문했고 다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 있는 언어가 되고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강준민… 글쓰기는 영혼을 치유한다

영혼의 일기로 마음에 정원을


글쓰기는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도구가 된다. 강준민 목사는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상처와 고통을 먼저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 다음 고통을 피하지 말고 글쓰기로 직면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영혼을 치유하는 글쓰기는 고통과 상한 감정을 다룬다. 글쓰기는 내면 깊이 감춰진 상처를 보게 하고 그것을 어루만져 치료한다. 글쓰기는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강 목사는 '영혼의 일기'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보통의 일기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를 담은 일기를 작성해 하나님이 치유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는 "글쓰기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로 데려가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하실 수 있는 작업장"이라며 "문제는 우리가 너무 바빠 하나님을 만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만날까 두려워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영혼의 일기는 마음의 정원을 가꾼다. 일상의 소음과 속도도 차단시킬 필요가 있다. 소음과 바쁜 일상은 영혼의 정원을 침입한다. 성경은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잠 4:23)고 했다. 그는 "영혼의 일기는 하나님의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영혼의 일기를 쓰면 자아 성찰과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고 말했다.

영혼의 일기는 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공간이다. 강 목사는 "고든 맥도널드 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내면세계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일기 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일기 쓰기는 예수를 닮게 하며 인격적 성숙을 추구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서영은… 방법이 아니라 삶이 먼저다

믿음의 삶 그 흔적을 담아야


서영은 작가는 글쓰기에 비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나는 45년간 소설을 써왔다. 그러나 글쓰기에 비법은 없었다"며 "비법을 내려놓으려고 45년을 노력했다. 삶은 어차피 양초처럼 자신을 태워 불을 내다가 재만 남는다"고 했다. 그는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나는 매일을 믿음으로 살려고 했다. 말과 글보다 내 몸짓과 눈짓으로 크리스천으로 보이기 바랐다"고 고백했다.

방법과 이론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서 작가는 목회자들의 설교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설교의 경우 가지런하고 또는 세련되게 표현해서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좋은 설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목회자 자신이 아는 믿음의 영역을 글로 옮겨놓은 것뿐이다. 설교는 목회자 자신이 복음을 지니고 사는 삶이 더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유목민처럼 목회자들의 설교를 찾아 들으러 다닐 때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설교가 복음을 아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지 어떻게 복음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복음과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삶의 흔적을 설교에 담아달라고 호소했다.

크리스천의 일상을 표현하는 한 가지 예도 들었다. "담벼락에 뻗친 넝쿨을 만났다 치자. 어떤 화가도 그릴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운 넝쿨은 창조 세계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가을날 아침,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와 피부를 스치는 바람. 자연은 나의 존재에 기쁨을 준다. 이 역시 믿음의 세계다. 우리는 이런 삶을 표현할 수 있고 살 수 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