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北 폭로 전략에 스텝 꼬인 정부… 군사접촉 전말 공개 파장

입력 2014-10-18 02:25

북한이 지난 15일 비공개로 열린 남북 군사 당국자 간 접촉의 ‘전말’을 폭로하면서 이달 초 실세 3인방의 방남(訪南)으로 조성된 남북 화해 무드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정부는 17일 북측 주장을 조목조목 재반박하고 나섰다. 제2차 고위급 접촉을 앞두고 남북이 치열한 ‘전초전’을 치르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에 정부가 일일이 맞대응하느라 속내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등 향후 대화 협상력을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남북 간 비공개 접촉은 북한의 ‘폭로 리스크’를 늘 내재하고 있다. 2011년 5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비밀접촉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자 북한 국방위원회가 내용을 전격 폭로한 게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 접촉에서 구태여 비공개 방침을 고수했다. 추후 2차 고위급 접촉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회담 과정에서 수틀리게 되자 북한은 폭로 카드를 다시 꺼냈고,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접촉과정 등에 대해 몇 차례나 해명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북측 주장이 기정사실화되고 정부가 말을 바꾸는 꼴이 됐다. 북한의 이런 술수를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닌데 또 당했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방부는 이날 다시 ‘백 브리핑’을 자청해 군사 당국자 접촉 전후 상황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당초 문제가 없었다던 수석대표 격(格)을 두고 남북 간 기 싸움이 팽팽했던 것도 새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이 7일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특사로 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판문점 접촉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김 실장보다 격이 낮은 김 정찰총국장을 내세워 회담하려 했지만 정부가 반대해 류제승 국방정책실장(예비역 중장)과 접촉이 이뤄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접촉 당시 우리 측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은 귀(북)측에 책임이 있다’고 분명하게 전달했다”며 “이에 (북측은) 사과나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NLL 아래쪽으로 북한이 지정한 이른바 ‘서해경비계선’을 두고도 남북이 치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북측이 교전수칙을 수정하고, 불법조업 어선 단속을 위해 양측 함정에 약속된 표식을 달아 우발적 총격을 막자고 주장하자 우리 측은 이를 NLL 무력화로 보고 표식보다는 군사 당국 간 직통전화 설치 및 운용을 역제의했다.

북한의 10일 오전 최후통첩이 있고 나서 정부가 한 시간 만에 회신한 것을 두고도 국방부 관계자는 “이전부터 심사숙고해 회신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북한의 ‘폭로 엄포’에 서둘러 응한 측면이 짙어 보인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정부가 북한의 술수에 말려든 꼴이 됐다”면서 “북측의 의도와 태도 변화를 예상하면서 좀더 기민하게 상황관리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백민정 유동근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