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라

입력 2014-10-18 02:08

골목마다 공중전화가 있던 시절의 일입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집어넣고 통화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그가 넣었던 동전뿐 아니라 수십 개의 동전이 좌르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것이 웬 횡재인가 싶어 동전을 주머니에 넣은 후 뒤돌아서는 순간 마음속에 꾸짖듯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네 것이냐?’

몸은 굳어지는 듯했고 도저히 걸음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돌아서서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하나하나 집어넣으며 회개 기도를 올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양심의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들 마음속 어딘가에 양심이 존재합니다. 양심은 종종 우리의 마음속에 메시지를 보냅니다. 귀에 들리는 음성은 아니지만 느낌으로 전달되는 이 메시지에 따라 우리들의 마음은 보람, 평안, 기쁨 또는 책망, 긴장, 두려움, 초조, 불안을 느낍니다. 이런 양심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데 그중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심이란 어떤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사랑은 청결한 마음, 선한 양심, 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본문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라고 말합니다. 파선은 배가 난파한다는 뜻입니다.

또 그는 믿음과 함께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양심을 버린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이 파선됐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신약성경에 ‘양심’이란 단어가 30회 정도 등장합니다. 구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믿음과 양심은 매우 밀접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양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점점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한때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라도 그의 양심이 더렵혀지면 믿음은 무너지고 구원의 기쁨은 사라지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여 예배하는 감격을 잃어버립니다. 생각에는 혼란이 오고 분별력은 흐려지며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채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것처럼 방황하게 됩니다. 심한 경우 양심이 화인 맞은 것과 같아서 회개하기 전보다 더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양심이란 집의 울타리와 같습니다. 울타리가 무너진 집에는 도둑이 들어오기 쉽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으며 결코 편히 쉬지 못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때로 그들의 양심적인 행동은 사회적 귀감이 되기도 하고 존경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존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구원과 은총을 입어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양심보다 못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의 은총 속에는 우리들의 더렵혀진 마음을 깨끗하게 하셔서 변화시켜 주시는 능력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분의 은총과 능력을 힘입어서 늘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착한 양심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마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따라 우리의 양심까지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황인돈 서울 아름다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