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발병 동아시아서 ‘1위’… 육류 위주 서구화된 식습관이 주범

입력 2014-10-20 02:59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온 한국인 유방암 발생률이 최근 일본을 앞서며 동아시아 국가 중 최고 위험 수위에 올랐다.

한국유방암학회(이사장 송병주 서울성모병원 내분비외과 교수)는 유방암 예방의 달인 10월을 맞아 한국인의 유방암 발생 현황을 조사한 결과 발병 양상이 서구식으로 급격히 변화해 인구 10만명당 발생빈도가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19일 밝혔다.

조사결과 2012년 기준 10만명당 한국인 유방암 발생률은 52.1명이다. 우리보다 먼저 식생활습관이 서구화 추세에 접어들어 장기간 동아시아 지역 내 유방암 발생빈도 1위를 차지했던 일본의 51.5명보다 0.6명이나 많다. 우리나라는 2008년 10만명당 유방암 발생률이 38.9명에 불과했다. 4년 만에 10만 명당 13.2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나이별로 유방암 환자를 분류했을 때 만 15세부터 만 54세까지의 유방암 발생률이 일본보다 앞섰고, 15∼44세 발생률은 미국마저 앞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연간 유방암 환자 발생 역시 1996년 3801명에서 2011년 1만6967명으로 늘었다. 15년 사이에 환자수가 약 4.5배 증가한 것이다.

생활습관의 서구화로 유방암 조직의 양상도 서구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도한 지방섭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ER+) 유방암’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암은 암세포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꾸준히 반응하며 성장하기 때문에 치료 후 오랜 기간이 지나도 재발 위험이 있어 호르몬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2002년만 해도 전체 유방암 환자의 58.2%에 그쳤던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 비율은 2012년 기준 73%까지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10년 사이 14.8% 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송 이사장은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육류 위주의 과도한 포화지방 섭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최근 발표된 해외 연구결과를 봐도 포화지방 섭취가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약 30%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폐경여성의 유방암도 꾸준히 증가 중이다.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폐경 전보다 폐경 후에 더 잘 발생하고, 에스트로겐의 주된 공급원도 지방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폐경 후 유방암 발생률이 전체의 절반(53.4%)을 넘어섰다. 유방암 환자의 평균 연령도 51세로 2000년의 46세보다 5세나 많아졌다.

2012년 기준 한국인의 하루 육류 섭취량은 85.1g으로 1998년(53.7g)보다 58.5%나 증가했다. 지방이 많이 함유된 육류 중심의 식습관이나 비만 외에 유방암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요인으로는 초경이 빨랐거나 반대로 폐경이 늦었을 때, 첫 출산을 경험한 나이가 고령이었을 때, 수유 경험이 한번도 없을 때 등이 꼽힌다.

아주대병원 유방암센터 한세환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유방암 발병이 급증하고 패턴이 변화하는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이 아닌 북아메리카, 서유럽,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과 함께 유방암 고위험 국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방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 가능성이 아주 높다. 0기 진단 환자는 5년 생존율이 98.8%에 달한다. 1기와 2기 진단 환자도 5년 생존율이 각각 97.2%, 92.8%로 90%를 웃돈다. 반면 4기 및 말기에 발견한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은 44.1%에 불과하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