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430장(통 45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7장 54∼60절
말씀 : 복음의 농사를 위하여 하나님은 못자리가 되는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그중 한 사람 스데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순교함으로 복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머리와 얼굴이 터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이마와 입술에 선혈이 낭자했을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은 증오심 속에서 마귀에게 사로잡혀 무지막지하게 덤볐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가면서도 그의 얼굴은 천사의 모습이었으며 평온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의 못자리판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통해 발견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무엇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스데반의 순교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합니다. 이러한 스데반의 순교는 체험적 신앙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음을 보았고 십자가 위에 천국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정한 축복을 그는 보았기에 그들이 불쌍해서 무릎을 꿇고 오히려 중보기도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참된 발견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발견을 해야 영의 눈이 뜨이며 영의 눈이 뜨여야 새로운 세계에서 새 피조물이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보자 “지금까지 내가 깨달은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빌 3:8)고 하였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실체를 보고 영혼을 보고 천국을 보아야 합니다.
둘째, 영적 세계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야 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며 지켜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싸워야 할 것은 배후에 있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입니다. 겉을 보지 말고 속에 있는 영혼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을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미워합니까? 왜 저주하고 다툽니까? 사람은 겉을 보고 판단합니다. 외모와 지위와 재산을 봅니다. 우리는 속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그 영혼이 구원받았는가?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신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는가? 이런 것들을 보아야 합니다. “나 야훼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영적인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스데반은 예수님과 천국을 보았습니다.
셋째,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이와 같은 용서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사랑의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는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터지니 속에서 사랑의 꽃망울이 온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그 직후 사마리아 지역의 문이 열렸고, 죄인의 괴수 사울이 바울이 되었으며,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통해 이방인에게도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첫 순교자로 인하여 그 뒤를 이은 모든 순교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죽어갔습니다.
현대는 일사각오의 순교신앙이 보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복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죽기까지 바로 믿는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스데반의 신앙을 본받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봉준 목사(구로순복음교회)
[가정예배 365-10월 20일] 스데반처럼
입력 2014-10-20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