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교육 당국에 손배 청구할 듯… 고법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제 오류 인정 파장

입력 2014-10-17 04:00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 세계지리 8번 문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번을 정답으로 발표했고 서울고법은 ‘정답 없음’을 인정했다.

서울고법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민중기)는 16일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제의 오류를 인정하면서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진리를 탐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실하지 않은 답을 정답으로 인정하는 것은 교육의 본래 목적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법원이 8번 문제의 오류를 인정함에 따라 해당 문항을 틀린 학생들이 교육 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가능성이 커졌다. 교육 당국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재판부는 "평가원이 문제가 없다고 본 세계지리 8번 문제의 ㉢지문은 명백히 틀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답이 없음에도 평가원이 2번을 정답으로 결정한 것은 위법했다는 지적이다. 문제가 된 ㉢지문은 'EU의 총생산액이 NAFTA보다 크다'는 내용이다. 교과서를 기반으로 출제된 지문이었지만 2010년 이후 NAFTA가 EU의 총생산액을 추월하면서 현실과 맞지 않게 됐다.

재판부는 '㉢지문이 교과서에서 출제됐더라도 사실이 아니라면 정답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수능 출제 범위를 고교 교육과정으로 제한한다'는 원칙은 고교 교과서가 진실한 정보를 담았을 때만 적용된다는 취지다. 앞서 1심은 "8번 문항에서 ㉠지문은 명백히 옳고 ㉡, ㉣지문은 틀렸기 때문에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 ㉢이 있는) 2번 정답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평가원 측은 소송을 낸 수험생들의 수능 등급을 다시 매겨야 한다. 8번 문항을 틀린 수험생들이 평가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서울지법은 지난 2003년 사법시험 출제오류로 불합격한 후 소송을 통해 합격한 고시생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자료로 1000만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수험생들이 8번 문제 때문에 대학 불합격 등 피해를 받았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수험생들이 대학에 입시 재사정을 요구하고, 대학을 상대로 불합격 취소소송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판결이 확정되고 세계지리 등급을 다시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이 걸림돌이다. 8번 문항 하나 때문에 입시에서 떨어졌다는 부분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수험생 측을 대리한 박현지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당락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입시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했던 학생들 일부는 대학 상대 소송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며 "입시가 진행 중이면 몰라도 이제 와서 수능 등급을 다시 산정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