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보츠와나 중부 도시 마하라페. 먹빛 하늘에서 종일 비가 내리는 우울한 날씨다. 오늘도 잠잘 곳을 찾아야 한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다. 따뜻한 샤워에 김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하다. 아니면 따뜻한 방바닥이라도 그저 고맙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여기는 아프리카다!
숙소를, 정확히는 텐트 칠 자리를 알아보는 중에 귀한 초청이 들어왔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맥스(Max)라는 친구가 어머니 댁 빈 창고에서 자도 된단다.
“방이 없어서 미안해요. 방마다 식구가 여럿이 자거든요.”
“무슨 말씀인가요? 이 정도면 최고의 공간입니다.”
별채 부엌 옆에 창고로 쓰이는 공간이었다. 그의 누이와 조카가 우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급하게 바닥 청소를 해준다. 창고 옆에는 덜 익은 수박과 야채들로 가득했다. 팔기엔 값어치가 없지만 식구가 철을 나기엔 충분해 보인다.
비라도 피한 게 어딘가 싶다. 눅진한 흙냄새가 펄펄 풍기는 실내에 텐트를 쳤다. 침낭에 몸을 들이미니 번데기가 된 기분이다. 아늑하다. 몹시 아늑해서 저녁식사 생각이 달아날 만큼 몸을 움직이기조차 싫어진다. 하이테크 시대에서 승자독식의 피비린내 나는 경쟁에 놓여 있다가 이젠 누울 자리만 있어도 행복한 인생이 되었다. 늘 그런 광야의 여정이지만 이럴 때마다 정말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넘치는 감사가 된다.
저녁 만찬은 콘 통조림과 과일 두 알. 그래도 이게 어디랴? 옥수수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나는 이웃들에게 차마 꺼내 보이기 미안한 진수성찬이다. 식사 중에 비가 그쳤다. 귀찮긴 했지만 양치만은 하려고 오들오들 떨며 밖으로 나왔다. 밤이 내린 세상, 주위는 고요한 어둠에 잠겼다. 밤의 침묵은 어째서 이토록 아릿한 것일까. 나는 보았다. 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별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로맨틱한 그림들을.
문득 전기가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아프리카에 왔지만 틈만 나면 컴퓨터와 아이팟을 사용하고 무의식적으로 전기에 의존하는 나를 본다. 전기 없이는 하루 나기도 힘겨워하는 나는 여전히 문명 제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적 현대 인간이다. 그런 내가 광야의 길이라니 당치도 않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얗게 발하는 가짜 빛에 마음 두며 살아가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전기는 일상의 혁명을 가져다주었지만 일상의 소소한 보물을 빼앗아가기도 했다. 명멸하는 별빛을, 밤이 오는 소리를, 건강히 자야 할 때를, 하나님이 태초에 만드신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예배당 십자가의 빛은 환하기만 한데 정작 그 아래 빛을 잃은 표정들이었던 상처 입은 교회들. 때론 문명은 편리한 것들을 얻기 위해 자연스러움을 잃도록 강요했고, 강렬한 인공 빛 아래 빛 되신 주님과의 교제마저도 희미해지도록 만들었다.
전기 없는 밤, 하늘에 박혀 있는 유난히 청초한 별빛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잔잔한 묵상이 된다. 별이 반짝반짝, 어느샌가 수줍게 내 가슴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그렇게 벌써 몇 분째 멍하니 고개를 젖혀들고 있다. 입에선 “너를 위해 저 별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고 아들을 주셨네”라는 찬양이 흘러나온다.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7) 별이 빛나는 밤에-뱟보츠와나 마하라페에서
입력 2014-10-18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