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전적인 독학 화가’의 미술관 건립 꿈이 이뤄졌다.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화악산 자락에 전면이 유리로 된 둥근 고리 모양의 건물이 들어섰다. 깊은 산세와 계곡의 물소리가 어우러져 ‘자연 속 아날로그 미술관’을 표방하는 이상원미술관. 열여덟 살에 혼자 상경한 이상원(80·사진) 화백이 고향을 떠나온 지 60여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18일 개관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1952년 화가의 꿈을 품고 홀로 서울에 올라와 20년 가까이 극장 간판 그리는 일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벤허’ 등 1960∼70년대 영화의 주요 극장 간판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인물 묘사에 탁월한 실력을 지닌 그는 점차 유명세를 타면서 초상화 주문을 받게 됐다.
1970년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영정 초상화로 이름을 알린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초상화를 비롯해 해외 국빈을 위한 선물용 초상화를 도맡아 그렸다. 그러다 80년대 초 상업 초상화 제작을 중단하고 순수미술로 돌아섰다. 이후 작품은 국내외 미술관 소장품 외에는 거의 팔지 않았다. 지난 30여년간 작업한 1000여점이 미술관 건립의 기반이 됐다.
미술관 건립은 서울 인사동과 팔판동에서 갤러리 상을 운영했던 이 화백의 아들 이승형(48) 대표가 추진했다. 대지면적 1만5737㎡(전시공간 4789㎡)에 작가 스튜디오와 게스트하우스 등을 갖춘 5층 규모다. 미술관 입지 조사부터 설립까지 10년이 걸렸고, 총 180억원이 투입됐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개인이 이런 규모의 미술관을 지역에 건립한 것은 드물다.
내년 3월 29일까지 열리는 개관전 ‘버려진 것들에 대한 경의’에는 하찮은 것들을 한지에 극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50여점을 선보인다. 이 화백은 15일 현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고향에 미술관을 세운 것이 꿈만 같다”며 “예술과 자연이 주는 풍요와 치유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앞으로 국내 작가 중심의 기획전 및 관객들과 함께하는 힐링 프로그램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033-255-9001).
춘천=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팔순에 이룬 ‘독학 화가’의 미술관 건립 꿈
입력 2014-10-17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