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고3 시절 그는 학교 계단에서 떨어졌다. 한쪽 발을 쓸 수 없게 됐다. 프로배구 선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오랜 시간을 방황하며 지냈다. 2년제 대학 컴퓨터 관련 학과를 나와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꿈꿨던 삶은 아니었다.
“의미없는 세월을 보냈던 거 같아요. 할 줄 아는 게 배구뿐인데 배구를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는 2011년 다시 배구공을 잡았다.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전국장애인체전에 출전했다가 천안시청 감독의 눈에 띈 것이다. 그는 다시 배구를 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배구 국가대표팀의 ‘꿈나무’ 박연재(28)의 사연이다.
박연재를 비롯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태극전사들이 18일 개막하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가슴 뭉클한 드라마를 펼쳐보인다.
◇세계 핸드사이클 제패한 ‘철의 여인’=마흔을 넘긴 나이에, 그것도 핸드사이클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세계 정상에 오른 이도연(42). 그녀는 19세 때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후 15년 넘게 세상과 등지고 살았다.
이도연이 처음 시작한 운동은 탁구다. 그녀는 6년 동안 탁구에 전념했지만 두터운 선수층 때문에 태극마크를 달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2012년 육상 필드로 종목을 바꿨다. 그녀는 그해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창, 원반, 포환던지기에서 모두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3관왕에 올랐다. 그러나 세계 수준의 기록에 못 미쳐 메이저대회 출전이 좌절되자 지난해 5월 핸드사이클에 도전했다.
이도연은 지난 5월 이탈리아 월드컵, 7월 스페인 월드컵, 9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열린 국제사이클연맹(UCI) 세계선수권대회 도로독주에서 정상에 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도연은 가족 사랑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그는 16일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그 열망을 이해하고 응원해 준 가족 덕분에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며 “특히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꿈을 향해 가라며 도와 준 세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보치아의 ‘맞수 대결’=뇌성마비 중증 장애인이 출전하는 보치아에선 BC3(최중증 장애등급) 부문 세계랭킹 1, 2위에 올라 있는 정호원(28·속초시장애인체육회)과 김한수(22·경기도장애인보치아연맹)가 결승전에서 맞대결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두 선수는 2010년 광저우 대회 개인 결승전에서도 만났다. 당시 김한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6년 연속 세계랭킹 1위인 정호원은 이번 대회에선 금메달을 순순히 내주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들은 개인전에선 금메달을 다투는 라이벌이지만 페어에선 짝을 이뤄 금메달에 도전한다.
정호원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께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며 “이번에도 금메달을 따내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한수는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배들을 보며 꿈을 키워 왔다”며 “호원이 형과 호흡을 잘 맞춰 아시아 최고, 세계 최고에 오르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휠체어댄스스포츠의 화려한 몸짓=이번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휠체어댄스스포츠는 장애·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화합의 무대다. 특히 남녀 커플 경기가 많아 아름다운 무대를 즐길 수 있다.
각종 세계 대회에서 금메달을 석권한 스타 선수들이 이번에 대거 태극마크를 달고 ‘드림팀’을 꾸려 금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한국 대표팀은 예술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재우(20·용인대스포츠레저학과·비장애)-장혜정(37) 커플은 휠체어댄스스포츠계에서는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4년 전부터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며 국내외 대회를 잇달아 석권한 이들 커플은 차원이 다른 춤사위로 관중의 탄성을 자아낼 전망이다.
휠체어댄스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된 장혜정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소통하고 공동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휠체어댄스스포츠가 아시안게임을 넘어서 올림픽까지 저변확대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휠체어럭비 ‘한·일전 빅매치’=휠체어 경기 중 유일하게 휠체어끼리 접촉이 허용되는 휠체어럭비에선 치열한 한·일전이 펼쳐진다. 이번 대회에서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럭비는 아시아권에선 일본이 최강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한·일전에선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며 금메달을 바라보고 있다.
휠체어럭비는 일종의 ‘뉴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종목이 혼합돼 있기 때문이다. 하영준(47) 휠체어럭비 국가대표팀 감독은 “휠체어농구의 일부분과 아이스하키의 룰을 따랐다”며 “전술적으로는 럭비와 비슷하지만 테크닉은 핸드볼과 같다. 쉽게 설명하면 공을 소유한 채 키 에어리어를 통과하면 1점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증 장애인들이 휠체어럭비를 꾸준히 하다보면 굉장한 운동능력을 갖게 된다”며 “처음엔 혼자 휠체어에도 못 앉던 선수들이 스스로 휠체어를 차에 넣고 내리기까지 하고 혼자 운전도 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덧붙였다.
인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D-1] 불가능 극복한 태극전사… 가슴 뭉클한 드라마 펼친다
입력 2014-10-17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