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권명수] 마음의 진통제

입력 2014-10-17 02:14

미국에서 프로작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프로작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 효과가 탁월하다고 소문이 난 항우울증 약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행하거나 힘들다고 느끼면 이를 극복하려는 다른 시도를 하지 않고 무작정 병원으로 달려가 프로작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은 이들은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함을 느꼈다.

마음은 행복해졌을지 몰라도 불행하게 만든 상황은 그대로였다.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손쉬운 해결책으로 돌아섰기에, 자신을 힘들게 한 대상이나 상황으로 인한 성장의 기회는 날려 버렸다. 결국 프로작 치료는 임시방편일 뿐 아픈 마음의 근원을 치료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생로병사가 피해 가지 않는다.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불행하거나 힘들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신앙인도 인간인지라 힘든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맞닥뜨리기보다는 쉽게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손쉬운 해결책인 프로작으로 도피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기도 하지만,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처신했느냐에 따라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내일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겪는 불행과 어려움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너무 아파 몸서리치기도 하지만, 아픔을 느끼면서도 이를 직시하는 것이 그리 힘든 것만은 아님을 경험하게 된다. 예전에는 아픈 현실을 두려워 떨며 억지로 바라봤다면, 지금은 그것이 무엇이든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길옆의 노란 국화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오리라.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진통제를 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 30). 예수님이 주시는 진통제는 예수님의 ‘짐’이다. 이 짐은 고통스럽지만 도망가지 않고 내 속에 계신 그분을 믿고 기도하며 지금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디겠다는 마음가짐이다. 힘들지만 이 감정을 바라보겠다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힘든 감정과 함께 하면 시간이 지나 그 감정은 서서히 녹고 영혼이 ‘쉬게 되는’ 은혜가 찾아온다.

외부 상황을 과소평가하거나 되는 대로 따르자는 운명주의적 자세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외적 요인과 대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도 이를 다룰 적당한 때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오늘 깨어 열심히 살자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면 예전과는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진통제를 찾고 싶은 유혹을 넘기고 나면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하는 사랑 많은 엄마 앞에서 맘껏 뛰노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의 진통제는 마음의 평강도 얻고, 성장도 하게 되는 은총이 된다. 불편함과 불행이 나를 힘들게 한다 해도 이는 나중의 더 풍성한 기쁨을 증가시키는 양념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면 삶의 고통은 오히려 삶을 자극하는 숨겨진 주님의 은총으로 다가온다.

권명수 교수(한신대 목회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