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입력 2014-10-17 02:23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열한 은사에는 특별하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평범한 것도 있습니다. 그 은사의 목적은 예수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은사는 특별할 수도 있고, 평범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를 긍정하면서 자기의 장점이나 자기가 잘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잘 살려서 공동체의 유익을 끼친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받은 성령의 선물이고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래도 ‘나는 받은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 중에서 가장 큰 것이고 가장 좋은 길이라고 합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 사람, 자기 자신이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좋은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 같이, 누군가가 나를 사랑함 같이, 나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은사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예수님이 병자들을 치유할 때나 귀신 들린 사람들을 회복시킬 때나 사람들을 구원할 때마다 표현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불쌍히 여기셨다”입니다. 성서 원문에는 이 말이 ‘스플랑크니조마이’란 헬라어로 쓰여 있습니다.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창자나 내장을 뜻하는 단어의 동사형인데,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단장(斷腸)의 슬픔입니다. 우리말에 애가 탄다는 말이 있는데 이 ‘애’는 ‘창자’를 뜻합니다.

구약성서에서 ‘긍휼’이라는 말은 엄마가 뱃속의 아이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을 말합니다. 뱃속의 아이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엄마의 영양분을 받아 자랄 뿐입니다. 때로는 엄마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긍휼은 히브리어로 ‘라카밈(라훔)’이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자궁’을 말합니다. 자궁이라고 표현할 만큼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긍휼의 마음입니다.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함께 아파함’과 ‘동정’입니다. 함께 아파함은 영적 변혁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목적 그 자체입니다. 다른 사람들, 모든 생명과 함께 느끼는 것, 특히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은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생명과 평화를 향한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고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생명과 평화를 긍정하는 사람들 모두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궁에 열 달 동안 품었던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안고서도 왜 죽어야 했는지 그 과정과 이유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지금도 애쓰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성령의 은사 중에서 가장 크고 좋은 은사인 사랑을 행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존재이고,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성령의 은사를 받으신 여러분의 활동이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고 덕을 세우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크고 좋은 은사인 사랑으로 아픔이 있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며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시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