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교육과 고등군사반(OAC)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나는 국방부 직할 정보사령부 전산실로 발령받았다. 주일마다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후 설교 테이프를 구입, 수십 차례 반복해 들었다. 심지어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나 들을 수 없을 때까지 반복해 듣기도 했다. 그리고 말씀을 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했다.
1983년 여름 어느 주일 조 목사님께서 “야곱이 얼룩무늬와 점이 있는 아롱진 양 새끼를 낳도록 하기 위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가지를 얼룩지고 아롱지게 껍질을 벗겨 양떼들이 와서 물 먹는 개천의 물구유 위에 세웠다. 양떼들이 물을 먹을 때마다 얼룩지고 아롱진 그 가지들을 바라보며 물을 먹고 새끼를 배므로 얼룩지고 아롱진 양 새끼를 낳았다”고 설교하신 것이 기억난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라고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들은 후 “하나님, 우리 가문의 혈통을 개량할 수 있도록 ‘롱다리’ 아들을 하나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당시 우리 가문에는 175㎝가 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모두 단신이었다. 마침 아내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나는 밤낮으로 185㎝의 롱다리 아들을 한 명 달라고 무려 20여년을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20년 후 우리 가문을 개량한 185㎝에 근접한 아들로 응답해 주셨다. 즉 꿈을 구체적으로 품고 믿음으로 도전하며 실천하는 사람과 그저 머리로 막연하게 생각만 하는 사람은 천양지차가 있음을 깨달았다.
국방부에서는 1980년대부터 국방업무 자동화를 위한 인재 양성 차원에서 우수 장교를 선발해 국비로 미국 유학을 보냈다. 정보사령부 전산실에 근무하며 미국 유학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부대와 30분 거리인 출퇴근시간을 아끼려고 부대에 있는 독신장교숙소를 빌려 유학시험 준비에 집중했다. 주말이나 휴가 중에는 조용한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했다. 집을 나설 때도 항상 머리 위를 가로질러 귀를 덮는 헤드폰을 끼고 영어 테이프를 들었다. 헤드폰을 잠시라도 벗으면 내 얼굴 모양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은 ‘주대준 대위’를 떠올릴 때 헤드폰 낀 모습이 먼저 생각날 정도였다. 정보사령부 전산실에 근무하면서 ‘북한군 전투서열’ 프로그램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고, 1983년 국비유학 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결과 국비유학 시험에 합격했다. 내가 공부할 미국 대학원에 지원해 입학승인서만 나오면 유학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유학 준비기간 동안 영어교육도 집중적으로 받았고 유학 장교로서 지켜야 할 정신교육과 보안교육 등 일련의 준비 과정을 끝내고 입학승인서가 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이닥쳤다. 대학교 성적도 괜찮았고 전산장교 실무 경력이 있기에 입학 승인은 당연히 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입학불가’ 통보를 받은 것이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내가 지원했던 미국 대학원(NPS·Naval Postgraduate School)에서 직접 통보받은 것이 아니라 육군본부 교육담당관으로부터 그냥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만 받았다. 대체 왜 내가 떨어졌는지, 나의 부족한 점과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탈락의 정확한 이유를 알려고 NPS에 국제우편으로 직접 물었다. 얼마 후 미국에서 온 답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학교에서는 입학 승인을 거절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미적분 3학점을 이수하고 오든지, 먼저 와서 사전학기를 이수하라는 통보였다. 육군본부에 재심의 요청을 했다. 그러나 이미 심사위원회에서 결정이 난 일이고, 나 대신에 유학 갈 대상자가 확정됐다며 거절당했다. 남들은 일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풀리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장애물이 많고 고생을 해야 되는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정리=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역경의 열매] 주대준 (10) “키 작은 우리 집안에 185㎝ 아들을 주세요”
입력 2014-10-17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