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권력·책임·능력 상실… 이젠 국가는 없다

입력 2014-10-17 02:32

정치에 대한 절망은 꽤나 오래된 것이지만 최근엔 국가에 대한 절망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국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국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특히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질문을 폭발시켰다. “이건 국가도 아니다”라는 말이 서슴없이 터져 나오는 중이다.

국가에 대한 절망은 국가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상황과도 연관되는 듯 하다. 불평등이나 복지, 실업 등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부분은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어떤 문제도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계속 유예될 뿐이다. 쌓이는 것은 분노뿐이다.

폴란드 출신의 탈근대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과 이탈리아 사회학자 카를로 보르도니의 대담집인 ‘위기의 국가’는 왜 국가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증가하고 있는지, 국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나 위기가 왜 해결되지 않는지에 대해 하나의 설명이 된다.

두 석학의 진단에 따르면, 이제 국가가 뭔가를 해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국가는 지금 위기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화와 관련된 것으로 위기나 문제는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고 전 지구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데 반해 국가의 힘은 영토와 국민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에서 기인한 것으로 원래 국가의 책임이었던 것들 중 상당 부분이 민영화 등을 통해 사적 부문에 넘겨졌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원래 국가의 책임이던 것들의 대부분을 사적 부문에 넘겨버립니다. 그 결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통치하는 완전히 새롭고 이상한 지배 형태, 즉 ‘국가 없는 국가’가 출현합니다.”

“국가가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최후의 강력한 중재자, 경제 규제의 주체, 안전의 보장자로서 행동할 능력을 상실한” 시대에 국가는 “공공복지를 제공하고 보장하는 기구가 아니라 시민에 빌붙어서 오로지 스스로의 생존에만 신경을 쓰는 기생충”이 되고 만다. 국가의 위기는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로 인한 정치에 대한 거부, 즉 ‘반(反)정치’는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둘의 대담은 현실 유럽 정치의 현실을 두루 짚으며 전개된다. 국가와 민주주의 위기는 전 지구적 현상이며 한국 현실에서도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이들의 전망은 상당히 절망적이다. 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은 나타나지 않았고, 개인들은 순전히 개인적으로 만성화된 위기 속을 통과하고 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호출하고 의지했던 국가는 어디로 갔는가? 국가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 해결 주체의 위기가 현실이라면 앞으로 개인들은 무엇에 기대고 의지해야 하는가? 어둡고 무거운 질문들이 남는다. 안규남 옮김.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